북리뷰/문학반

마르그리트 뒤라스 <고통>

나에대한열정 2020. 9. 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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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43~1945년, 나치에 의해 포로수용소에 정치유형수로 끌려갔던 남편 로베르 앙텔므를 기다리는 동안과 돌아온 이후 회복하는 단계까지 쓴 뒤라스의 일기와 몇편의 짧은 이야기가 덧붙여있다.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읽으면서 몇십번의 심호흡을 해야 했는지...얼마나의 초콜릿을 먹어야 했는지...


그녀가 느낀 모든 고통과 두려움과 치욕이 나를 짓눌렀다. 내게 이렇게 전달되는 이 떨림이, 힘겨움이 그녀에게는 어떠했을까...견뎌줬음에 감사할 뿐이다.



2부에서 등장하는 <이 글에서 피에르 라비에라는 가명으로 불리는 X씨> 에서 피에르 라비에라는 남자. 단편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남편 앙텔므를 체포했던 게슈타포인 샤를르 뒤발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편이 강제수용소에 있는 동안, 남편을 구하기 위하여 뒤발의 정부였었다는 말이 있으나, 그녀의 글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면서 말할 곳이 필요했던 남자의 흔들린 연민(어떠면 사랑?)이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진실이야 당사자만이 그나마 제대로 알터인데, 다른 이의 아픈 상처에 또 다른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카피탈 카페의 알베르>와 <친독 민병대원 테르>에서는 패전이후 레지스탕스들이 나치에 협력했던 친독 민병대원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고, 같은 행위가 반복될 뿐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고문의 장면으로 생각만으로도 힘겹다.


p. 11

고통이 극심해서 숨이 막힐 것 같고, 고통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고통에게는 자리가 필요하다.

p. 86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공포탓에 떨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p. 96

고통이란 대상없이 과거 위에 세워졌다. 희망이 이렇게 온전한 지금, 고통은 희망안에 뿌리 내렸다. 가끔 내 자신이 죽지 않는 것에 놀란다. 밤이건 낮이건 살아있는 육신속에 얼음같은 칼날이 깊숙이 박히고, 그러고는 살아남는 것이다.

p. 131

해방이 된 여름은 얼음덩어리처럼 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이야기 하기를 심한 공포가 확인되면 안도와 평화가 온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p. 133

갑자기 자유가 씁쓸했다. 희망의 완전한 상실과 그에 따른 공허를 금방 맛보았다. 그것을 기억할 수는 없다. 기억되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생기를 지닌 채 죽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가벼운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걸었고, 도로에서 인도로, 다시 도로로 돌아와 걸었다. 내 발이 저절로 걸어가고 있었다.

p. 135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불가능한 일로 생각될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죽는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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