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단상 - 걸스카우트1
고등학교 때 꼭 하고 싶었던 동아리 활동이 있었다.
바로 걸스카우트.
국민학교 때는 가위바위보에 져서 떨어지고, 중학교 때는 제비뽑기해서 떨어지고...마지막 기회.
동아리회원을 모집한다면서 선배들이 돌아다녔고, 가입하고 싶으면 언제까지 면접을 보러 오라고. 꼭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첫날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갔는데, 알고 보니 뭐 그냥 오는 사람 다 받아주는? 어쨌든 난 들어가면 되는 거고. 일단 소원성취!
선서식이 끝나고, 정말 열심히 활동을 했었다. 주요 활동은 한 달에 두 번 고아원을 가는 것과 교무실에 선생님들 쓰시는 수건에 G.S.라는 수를 놓아 매일 세탁해서 교체해 놓는 것, 그리고 가끔 학교횡단보도에서 교통안전지도, 그리고 운이 좋아(4년에 한번) 참가했던 국제잼버리.
그렇게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선배 중에 한 명이 뭐에 열이 받았는지, 1학년 단원 모두를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여고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었는데, 일단 모이라고하니 나갔고, 아이들이 다 모이자, 무작정 운동장을 뛰라고 시켰다.
"왜 뛰라는거야??" 우리는 궁시렁거리면서도 일단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바퀴를 채돌기도 전에 속이 울렁거렸다. 선두에 서서 뛰던 나는 멈췄고, 내 뒤를 뛰어오던 친구들은 내가 멈추니 저절로 멈춰섰다.
"누가 멈추라고 했어? 안뛰어?"
운동장 스탠드쪽에서 어느 선배인지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선배들한테 인상 한 번 써본적 없던 내가,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은 "저희 잘못한거 없는데요. 뭘 잘못했는지 먼저 말씀을 해주시던지요. 못뛰겠습니다."였다. 순간, 선배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 뒤를 따라온 말은 "안뛸거면 나가!"였다. 내가 얼마나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어했는지 알았고, 그래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들은 알았다. 그래서 내가 다시 뛸거라 생각했던 거였다. 그러나 선배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네, 나가겠습니다."그리고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교실로 갔다.
그 다음날부터, 걸스카우트 담당선생님의 호출과 선배들의 교실방문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심지어 찾아와서 울기까지했다. 내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면서. 결국 난 반강제적인 회유와 설득으로 다시 끌려(?)들어갔다. 기쁘게도 말이다. 막상 못뛴다고 나왔지만, 마음 한켠에는 어찌나 미련과 허전이 몰려들던지.
그리고 이주일 뒤~ 난 만장일치로 걸스카우트 차기 단장이 되었다.
여기가 무슨 공산당이냐? 담당선생님이 던진 한말씀.
그리고 그때부터 내가 잘 모르던 내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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