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콜슨 화이트헤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나에대한열정 2021. 4. 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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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슨 화이트헤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의 글들은 즐거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뗀다는 것이 참 어렵고, 눈이 다가가 있지 않을 때조차 온 마음이 그곳에 있게 된다. 내가 마치 탈출하는 흑인 노예라도 된 듯이, 주인공 코라의 상황에 따라 나 역시 그 상황에 빠져있었다. 책의 끝까지 완전한 자유는 있지 않았다.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1860년 미국의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기 이전인 1800년대, 남부의 노예들이 북부의 자유 주나 캐나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점조직의 이름이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였다. 노예제를 반대하던 흑인들과 백인들이 도망치는 노예들에게 비밀리에 먹을 것과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북부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역장, '기관사'로 불려졌고, 도망 노예들은 '승객'으로, 그들이 숨어있던 집들은 '역'으로 부르면서 실제로 철도용어를 은어로 썼고, 10만 명이 넘는 노예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이 이야기를 실제 지하철도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바꿔 주인공이 탈출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영화 <해리엇>에서도 지하철도 조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하철도의 일원이었던 실제 '해리엇 터브먼'의 이야기이다.)
 
책으로 돌아가보자. 책 앞쪽에 있는 지도. 한도시를 벗어날 때마다 자유는 더 간절해진다. 
 

1820년대, 조지아주.
랜들 형제가 소유하고 있는 농장이 있다. 형 제임스 랜들과 동생 테런스 랜들은 성향이 좀 달랐는데, 제임스에 비해서 테런스가 좀 더 많이 악독하다. 불행은 항상 더하여진다. 랜들 형제가 부모로부터 농장을 물려받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형 제임스는 죽고 동생 테런스가 그 모든 농장을 차지하게 된다. 
그 농장에는 '코라'라는 열살남짓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엄마 메이블이 코라를 홀로 남겨두고 탈출을 한다. 현상금을 걸고 노예 사냥꾼을 풀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혼자 남은 코라는 엄마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아바의 계략으로 <호브>라는 곳으로 쫓겨나는데, 그곳은 몸이 성하지 않거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이들이 지내는 곳으로 누구도 상종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코라는 꿋꿋하게 견뎌낸다. 그런 코라에게 탈출하자고 하는 남자아이, 시저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무시하지만, 시저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시저는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가족들을 거느렸던 가너 부인은 너그러워서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도 있게 했다. 그리고 부인 자신이 죽으면 그들을 자유롭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그 자유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줬는데, 부인이 죽으면서 유언장을 남기지 않아 그들은 부인의 유일한 상속자인 조카에 의해 남부로 팔리게 된다. 그것도 아버지 따로, 어머니 따로, 시저 따로 말이다. 다행인지 아닌지, 가너 부인이 죽기 전에 시저에게 글 이외에도 기술을 배우게 시켰는데, 목공소에서 목수일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때 '지하철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다.)
 
시저는 코라에게 지하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코라의 엄마, 메이블도 분명 그것을 통해서 탈출했을 거라고. 자기가 지하철도 있는 곳을 아니까 함께 하자고 말이다. 그렇게 탈출은 시작되고, 그들의 탈출에 현상금은 어마어마한 금액이 붙는다. 그리고 그들을 쫓는 이들중에는 예전에 코라의 엄마, 메이블을 잡는데 실패했던 리지웨이라는 유명한 노예 사냥꾼도 있었다. 14살에 순찰대와 이미 어울리기 시작했던 그는, 그때 키가 2미터였다. 그리고 메이블을 찾는데 실패한 이유가 남부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하철도가 놓였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시저와 코라는 무사히 그들의 첫목적지인 목초지가 보이는 시골집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시저와 알고 있던 플레처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수레로 이동하여 어느 헛간에 도착하게 되고, 그 헛간에서 역장 럼블리를 만난다. 헛간 안에는 수갑, 사슬, 입마개, 쇠고랑 등 온갖 것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어서 순간 그들을 당황하게 하지만, 그것들이 다 위장인 것이다. 럼블리가 발로 건초더미들을 치우니 바닥에 작은 문이 하나 있었고, 그 아래로 내려가니 거대한 터널이 보였다. 한 시간 뒤에 한대가 있고, 여섯 시간 뒤에 한대가 있는데, 두 기차가 같은 곳을 가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른다고 말한다. 정체가 드러나면 역을 폐쇄해야 하니, 자기들도 정확한 도착역은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그리고 다음 역에 내릴 수도 아니면 북쪽으로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했다. 선택은 그들의 몫. 그렇게 처음 그들이 도착하게 된 곳은 사우스캐롤라이나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도착한 시저와 코라는 그곳에 도착해서 만나게 된 역장, 샘으로부터 새로운 신분을 받는다. 코라는 베시 카펜더라는 이름으로, 시저는 크리스천 마크슨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는 잠을 잘 수 있는 기숙사가 제공되고(각자 다른 건물), 일할 수 있는 곳도 연결이 된다. 그리고 병원 검진도 하게 해 주고, 백인들이 쓰는 언어로 발음 교정을 해주고, 모든 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백인 가정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하던 코라는 박물관에서 일하는 것으로 자리가 바뀐다. 박물관에서는 미국 역사를 전시한다면서 흑인들은 코라처럼 사람으로 전시실 안에서 움직이게 하고, 백인들은 밀랍인형으로 대신했다.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코라는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조지아에서 생활하던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자유가 좋아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그냥 그대로 정착할까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검진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남자들은 매독 등 여러 가지 실험의 대상이 되는 거였고, 여자들에게는 불임수술을 권장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 흑인들이 백인의 수를 능가하자, 흑인들의 수를 제한하겠다는 암암리의 조치였다. 이제 분노한 코라는 다른 도시로의 이동을 결심하게 된다. 3일 뒤에나 기차가 있다고 하는데, 그때 샘에게서 들려오는 소식. 노예 사냥꾼 리지웨이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코라는 혼자 샘의 집으로 뛰어간다. 샘이 시저를 데려오기로 하고. 그러나 샘은 시저에게 갈 수가 없었다면서 혼자 먼저 오고, 코라에게 플랫폼으로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한다. 샘의 집 식탁 밑의 깔개를 걷어내고 그곳의 문을 통하여 코라는 터널로 내려간다. 아래에서 기다리다 지친 코라는 잠이 들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에 깨니 장정 여럿의 발소리가 위에서 들리고, 가구들이 넘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물건들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샘의 집이 불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코라는 손을 흔드는데, 기차가 역을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코라는 며칠을 굶어서 쉰 목소리로 울부짖었고, 그 소리에 기차가 후진하는 게 보였다. 기관사는 미안하다면서 이곳에 왜 있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이 역은 시간표에 없어서 지나간 거라고. 그리고 다시 코라가 혼자 도착한 곳은 노스캐롤라이나라고 기관사는 말해줬다. 코라를 내려놓고 기관사는 가버렸는데, 아무리 터널을 살펴봐도 공사를 하다가 만 흔적만 보일뿐, 입구가 있을 거 같지 않은 곳이었다. 바위 위에 쓰러져 울다가 잠든 코라를 누군가 깨웠다. 여기 왜 있냐면서. 이 역은 폐쇄되었다고 했다. 마틴 웰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역장은 너무 유감스러울 때 내렸다면서, 자신은 역이 폐쇄되었다는 것을 써놓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한다. 마틴은 일단 잠시 기다리라고, 자신이 마차를 가져온다. 그리고 방수포 밑에 코라를 숨기고 이동하다가 멈추더니, 보여줄 게 있다고 한다. 코라가 본 것은 나무에 시체들이 썩어가는 장식물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마틴은 이 시체들이 시내까지 가는 길 내내 걸려 있다는 말을 해준다. 그리고 코라를 자신의 집 다락에 숨게 한다. 절대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마틴은 아내인 에설과 함께 살았는데, 에설은 코라때문에 우리가 죽을 거라면서 마틴과 말다툼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넘어간다. 이 집에 일하러 오는 피오나라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한테도 절대 들키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마틴의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게 되는데.
 
다락방에 난 구멍으로 마을을 내다보던 코라는 금요일 저녁마다 공원에 사람들이 모여 흑인을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공원에서 보이는 모든 사람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흑인이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처형의 대상이 아닌 한. 
 
그러던 어느 날, 코라가 병이 난다. 위아래로 쏟아내는 코라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마틴부부는 일하러 오는 피오나에게 일주일 급료를 주고, 마틴이 병이 났다는 핑계로 오지 말라고 하고 코라를 밑으로 내려다가 간호를 한다. 축제가 있는 금요일 저녁, 마틴의 집에 단속 담당자들이 오고, 다락방으로 숨지 못한 코라가 마틴의 침대 밑에 숨지만 결국 잡히게 된다. 그리고 코라는 그녀를 계속 쫓고 있던 리지웨이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마틴 부부는 나무에 묶이어 죽게 된다. 흑인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코라를 손에 넣은 리지웨이는 이제 급할게 없다. 그리고 코라를 농장으로 데려다 주기 전에, 다른 더 급한 노예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남쪽이 아닌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리지웨이는 보스먼, 호머와 일행을 이루고 다녔는데, 몇 번 탈출을 시도했던 코라는 리지웨이에게 매질을 당하고 나서는 달아나기를 멈췄다. 그리고 테네시에 도착한다. 코라에게 뭐를 먹이기 위해서 리지웨이는 식당 쪽으로 데리고 가는데, 테네시의 백인들은 코라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코라의 움직임을 계속 쳐다보는 자유인 신분의 니그로 청년이 한 명 있었다.
 
마차를 어디서 멈추고 잠을 잘 것인지를 보스먼에게 정하게 했던 리지웨이가 잠들고, 보스먼은 코라에게 욕구를 풀기 위해 코라의 족쇄를 풀어준다. 움직일때 소리가 나면 안 되니까. 보스먼이 먼저 내려가고 코라가 내려오도록 하다가, 리지웨이에게 발길질을 당하게 되는데, 그때 세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그중 한 명이 아까 코라를 지켜보고 있는 청년(이 남자의 이름은 로열)이었다.
그들은 총을 들고 있었고, 호머는 달아나고, 보스먼은 죽어가고 있었고, 리지웨이는 코라가 묶였던 사슬에, 그들에 의해 묶이게 되었다. 죽이지 않는다. 죽이지를 않는다......코라는 그들과 함께 인디애나로 가게 된다. 그리고 글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고. 조금은 인간다운 생활을 이제 좀 하게 되는데.
로열은 코라와 친숙한 사이가 되었을 때, 코라에게 쓰러져가는 집 밑에 있는 터널을 보여준다. 아직 한번도 이용이 되지 않은 곳이라고. 
 
평화롭던 어느 날, 예배당안에서 흑인들만의 모임이 있었다. 강연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갑자기 강연자를 향해 총알이 날아왔고, 그 강연자를 향해 제일 먼저 일어났던 로열에게도 총알이 박힌다. 코라가 로열에게 가니, 로열은 코라에게 터널로 가라고 한다. 누군가를 찾는다고 계단을 오르던 코라를 잡는 손. 리지웨이였다. 그리고 그 뒤에 터널이 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호머가 서있었다. 
 
코라에게 터널로 안내하라던 리지웨이. 코라에게 앞장세우고 리지웨이는 바로 뒤에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코라는 리지웨이 쪽으로 갑자기 몸을 돌려 리지웨이를 두 팔로 꽉 껴안고 중심을 잡지 못한 그들은 터널의 바닥으로 떨어진다. 코라도 다리가 찢어지고 팔이 꺾이지만 제대로 떨어진 건 리지웨이였다. 
코라는 핸드카쪽으로 몸을 움직였고, 리지웨이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호머가 등불을 들고 내려왔지만, 떨어진 리지웨이 옆에 있느라고 코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리지웨이는 피를 흘리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호머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고, 코라는 온 힘을 다해 핸드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도 움직여보지 않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핸드카를. 그렇게 어딘지 모르는 곳에 도착한 코라는 터널을 나오니 동굴 밖이었고, 오솔길을 따라 나와 니그로 남자의 마차를 얻어 탄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어디서 왔는지 인사를 한다. 그 남자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캘리포니아까지 가서, 다시 다른 사람들과 미주리에서 만날 거라고 한다.
 

p. 21
모두가 검둥이에게는 생일이 없다고 알고 있었다.

 
 

p. 25
아바, 코라의 엄마와 아바는 이 농장에서 같이 자랐다. 둘은 똑같이 랜들에게 불려 갔고, 희롱은 너무도 일상적이고 익숙해서 날씨와도 같았으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극악무도해서 머릿속에 담아두기조차 싫을 정도였다. 때로 그런 경험은 서로를 묶어주지만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수치심이 모든 목격자들을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바와 메이블은 사이좋게 지낼 수 없었다.

 
 

p. 34
비참 속에 담긴 비참, 비참에도 질서가 있었고, 그 길은 따라야만 했다.

 
 

p. 126
그 백인이 덧붙였다. "우리는 낙관적입니다."
코라는 낙관적이라는 말의 뜻을 몰랐다. 코라는 그날 밤 다른 여자들에게 그 말을 많이 쓰느냐고 물었다. 그런 말을 들어봤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코라는 그 단어가 노력하고 있다는 뜻일 거라고 결론 내렸다.

 
 

p. 132
그는 미소지었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시민들에게 새로운 외과시술을 소개하는 대규모 공중 보건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아기가 자라지 못하도록 여자 몸속의 관을 자르는 수술이라고 설명했다......그가 여기 고용된 이유 즁 하나가 이 수술을 지역 의사들에게 가르치고 수술의 혜택을 흑인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선택은 물론 베시의 몫이죠" 그가 말했다. "이번 주부터 여기 주 일부 사람들에게는 의무 사항이 될 거에요. 아이를 두 명 이상 출산한 적이 있는 흑인 여성은 산아제한의 명목으로 그렇고요. 정신지체자나 여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유야 분명하겠죠. 상습 전과자들도요. 그러나 이런 건 베시에게는 해당되지 않아요. 그들이야 이미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는 여자들이고, 베시에게 이건 본인의 운명에 대해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일 뿐이죠."

 
 

p. 134
코라는 백인의 밀랍 얼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필즈 씨의 모형들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는 전시품이었다. 백인은 회반죽과 철사, 물감으로 되어있었다...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다른 사슬에 몸이 매었지만, 반역자들이 책임을 부정하려고 제 아무리 의상을 걸쳐도 반역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p. 136
어느 노예도 물레 앞에서 고꾸라져 죽거나 꼬인 실을 풀다가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세상의 진짜 모습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듣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유리에 그 기름진 코를 들이밀며 놀리고 비웃는 진열장 맞은편의 백인 괴물들 중에는 분명 없었다. 진실은 당신이 보지 않을 때 누군가에 의해 뒤바뀌는 상점 쇼윈도의 진열과 같았다. 그렇다고 결코 손에 닿지 않는.

코라는 마이클이 랜들 대농장 뒤편에서 독립선언문을 암송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성난 유령처럼 마을을 떠돌던 그의 목소리. 코라는 그 말들을 거의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말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정말로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것을 쓴 백인들 역시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흙처럼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든 자유처럼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했다면, 아니었다. 

훔친 땅에서 일하는 훔친 몸들, 그것은 피로 가는 보일러, 멈추지 않는 엔진이었다.

당신의 배를 갈라서 피를 뚝뚝 흘리는 미래를 들어내는 것, 누군가의 아기를 뺏어 간다는 건 바로 그런 것- 미래를 훔쳐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 땅에 있는 동안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고, 훗날 그들의 후손이 더 나은 삶을 살리라는 희망마저 앗아 가버리는 것이었다.

 
 

p. 141~145
그의 환자들은 자신들이 혈액병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투여하는 강장제는 그냥 설탕물이었다. 사실 그 검둥이들은 매독의 잠복 단계 및 3단계에 대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의사 선생님이 자기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겠네요?" 샘이 버트럼에게 물었다. 버트럼은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여전히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요한 연구거든요." 버트럼이 그에게 귀띔 했다. "질병이 어떻게 퍼지는지, 감염 경로를 알아내면 우리는 치료법에 한발 접근하는 거죠." 레즈는 시내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흑인 술진이었는데, 소유주는 이곳이 관찰받는 대신 가게 세를 면제받았다. 매독 프로그램은 그 병원의 흑인 병동에서 진행되는 여러 연구와 실험 중 하나였다.

미국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너무 많이 수입하고 자손을 퍼뜨려서 이제 많은 주에서 그들이 백인의 수를 앞질렀다- 처음에는 여자지만 곧 남녀 모두 -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잠든 사이에 우리의 목을 밸 거라는 두려움 없이 그들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자메이카 봉기를 계획한 이들은 고집스럽고 교활한 배냉족과 콩고족 출신이었다. 우리가 그 핏줄을 서서히 조심스럽게 제거한다면 어떨까? 흑인 이주자들과 그 후손에 대한 자료를 수십 년 모으면 역사상 가장 두드러지는 과학적 과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버트럼은 말했다. 조직적 불임, 전염성 질병에 대한 연구,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시술의 완성-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의학적 재능가들이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다 모여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이 백인 의사들 대신 둘을 믿을까?" 샘이 물었다. "무슨 증거로? 부당함을 바로잡아달라고 호소할 권위가 전혀 없어 - 도시가 이 모든 비용을 대고 있는 걸.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전부 같은 시스템으로 흑인 이주자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새로운 병원이 있는 곳만의 문제가 아니야."

그들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다른 흑인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같은 문제로 고심할 뿐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은 모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요, 시저가 말했다. 그들이 탈출해 나온 곳과 비교한다면 이런 소문이 대수일까? 이 새로운 환경의 수많은 가능성을, 소문에 불과한 이런 주장과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보면서 그들은 어떤 계산을 할까? 법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지금도 소유 재산, 서류함 속의 종이에 적힌 그 이름들은 미국 정부의 소유였다. 지금으로서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백인들의 통제와 명령에서 벗어났다고 믿으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자기앞가림을 잘해나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리저리 옮겨지고 길들여지고 있었다. 전처럼 단순히 물품으로써가 아니라, 가축이 되어서. 사육되고 거세되고 있었다. 닭장이나 토끼장 같은 기숙사에 갇힌 채.

 
 

p. 146~147
약한 고리 - 코라는 그 말의 느낌이 좋았다. 당신을 속박하는 사슬에서 결함을 찾는 것. 개별적으로 보면 고리는 별것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고리들과 합치면 그 약함으로 수백만 명을 속박할 수 있는 강력한 쇠붙이가 되었다.

집단을 이룰 때 그들은 족쇄가 되었다. 어디서 찾아내든 계속 주시하며 그 약한 고리를 조금씩 잘라낸다면 뭔가를 이루어낼 수도 있을까.

 
 

p. 188
새로운 인종법은 흑인 남녀가 노스캐롤라이나 땅에 발을 붙이는 것을 금지했다. 자기 땅을 떠날 수 없다고 버티는 자유인 신분의 흑인들은 쫓겨나거나 학살되었다.

 
 

p. 204~205
코라는 랜들 농장에서 애지중지했던 제 텃밭이 생각났다. 이제는 그게 얼마나 우스운 생각이었는지 알았다. - 자신이 뭔가를 소유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만들었던 조그만 땅뙈기, 그녀가 씨 뿔리고 잡초를 뽑아주고 수확한 목화가 그녀의 것이라면 그 땅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의 텃밭은 다른 곳 어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사는 어떤 것의 그림자였다. 독립선언문을 암송했던 가엾은 마이클이 다른 데 존재하는 무엇인가의 메아리였듯이. 이제 도망쳐 이 나라를 조금이나마 본 이상, 코라는 그 문서가 일말이라도 사실을 담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웠다. 미국은 어둠 속의 유령이었다. 코라처럼.

 
 

p. 207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람이 아니라고 규정하지 않는 이상.

 
 

p. 208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어쩌다 오해하게 되는 만큼이나 의도적으로도 오해했다.

 
 

p. 251
"너는 꼬마 시절에 내 이름을 들었다." 그가 말했다. "도망가는 모든 걸음, 도망을 치려는 모든 생각을 바싹 뒤쫓는, 처벌의 이름. 내가 노예 한 명을 집으로 데려올 때마다 스무 명씩 보름달의 계획을 포기하지. 나는 질서라는 개념이다. 사라지는 노예 - 그것 역시 하나의 개념이지. 희망이라는. 내가 하는 일을 거꾸로 돌려놓고, 바로 옆 대농장의 노예가 자기도 도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우리가 그것을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우리가 받은 명령의 결함을 인정하는 셈이 돼. 그리고 나는 그러기를 거부한다."

 
 

p. 266
책말고 유일한 읽을거리는 쌀 포대 자루에 쓰인 글씨였다. 고통을 약속하듯 쇠에 새겨진, 사슬을 제조하는 회사의 이름.

 
 

p. 287~288
코라는 낙인, 그러니까 노예 주이들이 제 재산에 불로 지져 넣었던 X표시, T표시, 클로버 모양에 대해 전에는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시빌의 목에는 시퍼런 말편자 모양의 징그러운 낙인이 있었다. - 시빌의 첫 주인은 짐수레 말을 키웠다. 코라는 자기 살에 그런 낙인이 찍히지 않은 것을 주님께 감사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곳에, 그게 아니면 마음속에라도 낙인을 갖고 있었다. - 랜들의 지팡이에서 생긴 상처가 바로 그것이었다. 코라가 그의 것이라는 표시.

 
 

p. 306
조지아의 비참함 속에서 코라는 자유를 상상했지만,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다. 이제 자유란 아름답고 귀한 무엇인가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었다.

 
 

p. 327
그녀가 딸에게 제일 처음으로 또 마지막으로 한 것은 사과였다. 주먹만한 코라가 배 속에서 자고 있었을 때 메이블은 그녀가 태어날 세상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10년 뒤, 오두막 옆자리에서 코라가 잠들어 있었을 때 메이블은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코라는 두 번 다 듣지 못했다.

 
 
※ 콜슨 화이트헤드의 다른 작품
 
2020.12.30 - [북리뷰/문학반] - 콜슨 화이트헤드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는 1969년 미국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이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2017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2019년에 발표한 <니클의 소년들>이 2020 퓰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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