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나에대한열정 2021. 4. 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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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La Vie devant Soi

 

"출판사에서도 원작자가 누구인지 몰라 광고를 통해 작자를 찾기까지 한 '75 공쿠르 상 수상자 에밀 아자르! 그는 누구인가? 정말 그가 썼는가? 왜 상을 거부했나? 전 세계에 파문을 던진 아자르의 충격!" 1976년에 출간된 문학사상사 판 <자기 앞의 생>에는 작가 소개 대신 이 문구가 자리하고 있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은, 1980년 로맹 가리가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 이후, 그가 남긴 유서를 통해 밝혀졌다. 로맹 가리는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는데,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또 한 번 공쿠르 상을 받아,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되었다.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야피, 라우드 알 라야힌

 

첫 문장: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7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문장: 사랑해야 한다.

 

로자 아줌마는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이다. 수년간 모로코와 알제리에서 몸으로 벌어먹고 살다가, 지금은 나이가 들어 창녀들의 아이들을 돌봐주며 받는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화자인 나(모하메드, 사람들은 '모모'라고 부른다.)는 로자 아줌마가 자기를 이뻐해서 돌봐주는 줄 알았다가, 돈을 받고 돌봐주는 것을 알고 한동안 반항을 한다.(집 아무 곳에나 똥을 싸는데, 아무 효과가 없자 그만둔다) 로자 아줌마는 65세의 할머니이고, 95킬로그램이 나가는 몸을 가지고 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에 살고 있어서, 늘 계단을 오르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한탄한다. 머리카락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이라서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된 적이 있었고, 독일 점령군에 배속된 프랑스 경찰에게 불시에 잡혀서 경륜장에 끌려갔던 이후로 늘 겁에 질려 있다. 건물 지하실에 아줌마가 무서울 때마다 찾는 별장을 가지고 있다. 로자 아줌마의 표현으로 별장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모모만이 알고 있다. 

 

5층에 사는 롤라 아줌마는 여장 남자로, 볼로뉴 숲에서 일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세네갈에서 권투 챔피언이었다. 모모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데가 있는 롤라 아줌마를 좋아한다.

 

카츠 선생님은 비송 거리에서 기독교적인 자비심을 베푸는 의사 선생님으로 유명했다. 밤늦게까지 찾아오는 사람도 다 치료해주고, 모모가 대기실에 그냥 앉아있고 싶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아가도 화를 내기는커녕 다정한 미소를 보내주시는 분이다.  

 

하밀 할아버지는 알제리에서 온 사람인데, 양탄자 행상을 한다. 모모가 물어보는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85살 정도에 모모가 로자 아줌마와 연결시키려고 하지만, 결혼하기에는 늦었다고 거절한다.

 

은다 아메데 씨는 파리 시내 모든 흑인들 가운데 제일가는 포주며 뚜쟁이다. 나이지리아 출신인데, 가끔 자기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탁하기 위해서 로자 아줌마를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하고 싶어 했다. 

 

나딘은 모모가 서커스를 보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금발의 여자로, 영화에 목소리를 입히는 일을 하는 것이 직업이고,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종이를 주면서 언제든 찾아오라고 한다. 

 

 

모모는 3살 때부터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았는데, 모모가 열 살 정도 되었다고 알고 지내던 어느 날부터, 모모는 아줌마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멍해졌다가,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가를 반복한다. 심지어 의식을 잃었을 때에는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는 지경이 된다. 모모는 카츠 선생님을 모셔온다.

카츠 선생님은 그렇게 나이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심장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7층이나 되는 계단에 오르내리는 게 쉽지 않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카츠선생님은 더 심해지면 이대로는 둘 수 없다고, 병원으로 옮겨야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로자 아줌마는 자신의 상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마다 모모에게 자신을 병원에 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 곳에서 실험대상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로자 아줌마가 돌아가시면 혼자 남겨져야 되는 게 무서운 모모지만, 아줌마를 병원에 보내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을 한다.

 

카츠 선생님이 이제는 정말 병원으로 옮겨야 된다고 얘기하자, 모모는 이스라엘에서 아줌마 친척이 와서 로자 아줌마를 데려가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갔을 때, 로자 아줌마에게 침대 밑에 있던 히틀러 사진을 보여준다. 아줌마는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사진을 꺼내보고 현실을 안도했다. 이번에는 사진을 보고 소리를 지르더니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듯했고, 마지막 힘을 내는 듯했다. 그리고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로자 아줌마의 별장인. 지하의 비밀방이었다. 모모가 잠들었다 깨었을 때, 로자 아줌마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히틀러의 사진을 앞에 가져다대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지하실까지 내려온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모모는 가지고 있던 돈으로 여러 번 화장품과 향수를 사 가지고 온다. 그리고 아줌마의 변해가는 얼굴에 화장을 해주고, 썩어가는 몸에 향수를 뿌려준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진동하는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사람들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 모모는 로자 아줌마 옆에 누워있었다. 모모는 구급차로 옮겨지고, 모모의 주머니에 있던 나딘 아줌마의 연락처가 쓰여있던 메모지를 보고 사람들이 그쪽으로 연락을 하게 되고, 모모는 나딘의 식구들과 함께 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만 보면 모모가 일반적인 아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다면, 어려운 삶에 처해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따듯한지, 모모가 얼마나 아줌마를 사랑했는지,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얼마나 의지했는지 알 수 있다. 분명 이상하고 슬픈 결말이지만, 웃음과 온기를 주는 글이다.

 

 

p. 13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p. 15
나는 엄마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만 빼고 모든 사람에게 다 엄마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보러 오게 하기 위해 복통과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길 건너에 풍선을 들고 서 있던 어떤 아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배만 아팠다 하면 엄마가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배가 아파도 소용이 없었고, 발작을 일으켜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좀 더 관심을 끌어보려고 아파트 여기저기에 똥을 막 싸 갈겼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p. 33
인생에는 원래 두려움이 붙어 다니기 마련이니까.

 

 

p. 49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 자신 뿐이란다.

 

 

p. 63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철학자 흉내를 내느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p. 66
로자 아줌마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떨고 나서 나한테 괜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목숨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p. 72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p. 81
나는 아줌마의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불행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날 때도 된 것이었다. 사는 동안 겪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니까.

 

 

p. 87~91
그 당시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해 입힌 내 우산, 아르튀르였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아르튀르가 옷을 입은 상태일 때는 끌어안고 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로자 아줌마가, 벌거벗은 아르튀르를 이불속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난리를 쳤다는 거다. 어느 미친놈이 우산을 침대 속까지 가지고 들어가서 같이 잘 생각을 하느냐는 것이다. 아줌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p. 94~95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p. 96~97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는 박하차를 가져다주는 드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오래 산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다."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p. 99
아줌마 혼자 배를 곯아가며 빠듯하게 지낸다 해도 하루에 십오 프랑은 필요했다. 그녀에게 덜 먹으려면 살을 빼는 수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뿐인 노친네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p. 103~105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마는 그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나는 절대로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열 살이라는 나이는 아직 어른들로부터 이것저것 배워야 할 나이다. 아무튼 나는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 쓴다.

하지만 행복에 관해서는 그놈이 천치 짓을 하지 못하게 막을 법이 필요하긴 할 것 같다. 

그런데 하밀 할아버지는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을 추구해야 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 바로 거기에 그것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해본 다음에나 그 행복이란 놈을 만나볼 생각이다.

 

 

p. 112~113, 115
"두려워할 거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실 말이지 '두려워할 거 없다'라는 말처럼 얄팍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희망이란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을 큰 힘이 된다. 미칠 노릇이다.

하밀 할아버지 말이 맞다.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한동안 어리둥절한 상태로 있을 뿐이라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p. 117~118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p. 120
땅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죽는 연습을 해봤지만, 시멘트 바닥이 너무 차가워 병에 걸릴까 봐 겁이 났다. 나는 마약 같은 너절한 것을 즐기는 녀석들을 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p. 122
내 생활은 매일이 똑같기는 했지만, 때로 다른 때보다 훨씬 기분이 안 좋은 때가 있었다. 아픈 데는 하나도 없는데 딱히 이유도 없이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있어야 할 건 다 있는데도 그랬다. 아마 하밀 할아버지도 그런 경우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p. 125, 127
나는 겁이 났지만 내가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괜찮았다. 나는 사람들이 숨을 쉬듯이 항상 이유도 없이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주 먼 곳, 전혀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가득 찬 곳에 가보고 싶은데, 그런 곳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공연히 그곳을 망칠 것 같아서이다. 그곳에 태양과 광대와 개들은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들은 그대로도 아주 좋으니까.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알아볼 수 없도록 그곳에 맞게 다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래 봤자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물들이 얼마나 자기 모습을 끈덕지게 고집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까지 하다.

 

 

p. 129~130
내게도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내게 고통만 주는 무능한 유태인 노인네보다는 더 나은 가정을 택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진작 사람들이 안락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 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p. 135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저능아다. 저능아란 세상에 재미있는 일아 아무것도 없어서 자라지 않기로 마음먹은 아이다. 그러면 난처해진 부모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p. 137
첫 시도에 망쳐서 목소리가 제때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시 해야 했다. 그러면 멋진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서 살아 있을 때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단추를 누르자 모든 것이 뒷걸음질 쳐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거꾸로 달리고 개들도 뒤로 달리고, 무너졌던 집이 내가 보는 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시체에서 총알이 튀어나와 기관총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살인자들은 뒤로 물러서서 뒷걸음질로 창문을 훌쩍 넘어 나갔다. 비워졌던 잔에 다시 물이 차올랐다. 흐르던 피가 시체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고 핏자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며 상처도 다시 아물어버렸다. 뱉은 침은 다시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말들이 뒤로 달리고 팔층에서 떨어졌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창문으로 돌아갔다.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생기 있는 로지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 더 시간을 거슬러올라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p. 138~139
나는 너무 만족스러운 나머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생각해보라.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던 집에 불이 꺼지고, 다시 일어서는 장면을. 이건 직접 눈으로 보아야 한다. 남의 눈을 통해 보는 것과는 다르다.

추억은 올려다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영화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여러분 각자 가지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그가 생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감상에 젖어서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다.

 

 

p. 142
나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었다. 기분이 별로였다. 그럴 때면 맛있는 것이 더욱 맛있어졌다.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죽고 싶어질 때는 초콜릿이 다른 때보다 더 맛있다.

 

 

p. 145
나는 내가 경찰이 될지 테러리스트가 될지 아직 몰랐다. 그것은 나중에 커봐야 알 것이다. 아무튼 어떤 조직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는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을 죽이는 건 정말 싫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아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빅토르 위고 같은 사람이다. 하밀 할아버지는 말이야말로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하밀 할아버지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고 했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무장강도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을 어렸을 때 사람들이 찾아내서 보살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보살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려고 떼 지어 다니기도 하고 심지어 굶어 죽기도 한다. 

 

 

p. 150~153
'낫지는 않아. 낫지는 않는단다'를 심각하게 강조하는 것이 내게는 몹시 우스웠다. 마치 낫는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미소를 지을 때 아줌마는 평소보다 덜 늙어 보이고 덜 미워 보였다. 그녀의 어린애 같은 미소는 미용 효과가 있었다. 그녀는 유태인 대학살 전인 열다섯 살 적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진의 주인공이 오늘날의 로자 아줌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로자 아줌마가 열다섯 살의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역시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 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양쪽으로 입을 벌리고 잔뜩 찡그려가며 생각했다. 이런 모습일까?

사람들은 창녀들이 젊었을 때는 성가시게 쫓아다니지만 일단 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젊은 창녀들에게는 포주가 있지만 늙은 창녀들에게는 아무도 없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늙은 창녀들만 받고 싶다.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 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p. 158~159
"모하메드야, 오십 년 전에 내가 로자 부인을 만났더라면 결혼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때 결혼했으면 오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게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결혼하면 서로 잘 볼 수도 없고, 미워할 시간도 없잖아요."

"모하메드야, 내가 만일 결혼이란 걸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유태인 여자와는 할 수 없을 게다."
"하밀 할아버지, 로자 아줌마는 이제 유태인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그저 안 아픈 구석이 없는 할머니일뿐예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이제 너무 늙어서, 알라신을 생각해줄 처지가 아니잖아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생각해줘야 해요. 할아버지가 알라신을 보러 메카까지 갔었으니까 이제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보러 와야 해요. 여든다섯 살에 뭐가 무서워서 결혼을 못하세요?"
"우리가 결혼해서 뭘 어쩌겠니?"
"고통을 서로 나눠 가질 수 있잖아요. 젠장. 다들 그러려고 결혼을 하는 거예요."
"나는 결혼하기에는 너무 늙었단다."
하밀 할아버지는 다른 일은 뭐든 다 할 수 있지만 결혼을 하기에만은 늙었다는 듯이 말했다.

 

 

p. 161
나는 콜레라에 대해 잘은 몰라도 롤라 아줌마의 말처럼 그렇게 구역질 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건 그거 병일뿐이고 병에는 책임이 없으니까. 나는 때로 콜레라를 변호하고 싶었다. 적어도 콜레라가 그렇게 무서운 병이 된 것은 콜레라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콜레라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콜레라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콜레라가 된 것이니까.

 

 

p. 167~168
조물주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잘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물주는 아무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꽃이며 새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젠 칠층에서 내려가지도 못하는 유태인 노파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샤르메트 씨가 불쌍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다 해도 그 역시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노인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말이다. 노인들이 결국 죽게 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나는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그다지 좋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p. 172~173
정신이 맑을 때 로자 아줌마는 말하곤 했다. 완벽하게 죽고 싶다고. 죽은 다음에 또 가야 할 길이 남은 그런 죽음이 아닌.

 

 

p. 177~179
신 얘기는 이제 지겨웠다. 신은 언제나 남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니까.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하밀 할아버지는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해 내 생각을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노인들은 겉으로는 보잘것없이 초라해 보여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다. 그들도 여러분이나 나와 똑같이 느끼는데 자신들이 더 이상 돈벌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보다 더 민감하게 고통받는다. 그런데 자연은 노인들을 공격한다. 자연은 야비한 악당이라서 그들을 야금야금 파먹어간다. 우리 인간들에게 그것이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노인을 안락사시킬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이 그들을 천천히 목 조르고 결국엔 머리에서 눈알이 튀어나오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두어야 한다.

 

 

p. 256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p. 310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란 게 없으니까.

 

 

p. 311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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