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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나에대한열정 2021. 7. 1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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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은 이 소설을 24살에 썼다. 몇 살에 이 소설을 썼는지 굳이 쓰는 이유는 어떻게 그 나이에 마흔을 바라보는 여자(이 소설의 주인공)의 느낌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이미 1954년, 18세의 나이로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자마자 비평가상을 받음으로써 프랑스 문단의 대표 신인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비평가 상의 상금이 10만 프랑이었는데, 사강은 미성년이라 통장거래를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전부 현금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로 재규어 XK 140을 구입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버스에서 우는 것보다는 재규어에서 우는 게 더 낫다."라는 말을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원래 이름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인데, 그녀가 좋아하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나오는 인물인 사강 공작(공작부인도 있다)에서 필명을 가져왔다고 한다. 공작에서 따온 건지, 공작부인에서 따온 건지는 밝히지 않아서 그 부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소설로 들어가보자.

 

39세의 폴은 실내 인테리어 일을 한다. 그리고 5년째 사귀고 있는 몇 살 연상의 애인 로제는 트럭과 관련된 사업을 한다. 로제밖에 모르는 폴에 비해, 로제는 자신이 원할 때만 로제를 만나러 오고,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폴에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한다. 그러나 폴은 그 여자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여자들이라며 묵인해버린다. 결혼에 대한 약속도 없이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중, 폴 앞에 25살의 젊은 수습 변호사 , 시몽이 등장한다. 폴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 시몽은 적극적인 행동들을 보인다. 남들의 시선도 별 상관없다. 폴은 로제와는 너무 다른 시몽에게 끌리면서도, 나이 차이도 신경 쓰이고,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시몽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늘 주말에는 로제와 함께 지내려고 기다리는 폴인데, 로제가 일이 있다면서 주말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날은 아침에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냐며, 자신과 함께 브람스 연주회에 함께 가자고 메모를 보낸 상태였고, 아직 대답을 안 했던 폴은 시몽과 함께 연주회에 가게 된다. (소설의 제목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말줄임표를 사용한 이유가 이 대목에 등장한다. 스스로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를 묻던 폴은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잊고 지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제는 사실, 이 주말에도 어떤 여자와 함께 있었다. 폴이 로제와 대화 도중 그 사실을 느끼게 되고(로제는 다른 여자와 있었던 경우에 늘 하는 행동들이 있다), 자신만 미련스럽게 바라보는 것에 대해 분노를 하게 된다. 그리고 시몽과 만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로제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몽과의 만남도 잠시. 폴은 다시 끊지 못하는 로제와의 관계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이 작품은 단순한 줄거리로만 보면, 참으로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답답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사랑의 문제가 아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여자가 왜 다시 미련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에 대한 것을 사강은 작품 곳곳에 써놓고 있다. 결정적으로 p. 139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느낌을 가져보지도 못했을 나이의 작가가 그래서 놀라웠는지도 모르겠다.


첫 문장: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우 흔히 갖게 마련인 신랄함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조심성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지고, 좌절로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아홉 해로 나누어 보았다.

 

 

p. 11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p. 15
그녀는 자신의 이해심과 애정으로 인해 그녀가 슬그머니 그의 상담자 역을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점점 더 커져 가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녀의 삶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고, 그녀는 정말이지 존경받을 만한 신중함으로 그가 그 사실을 잊는 것을 돕고 있는 셈이었다.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p. 43~44)

 

 

p. 45
산책의 동반자든 인생의 동반자든,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언제나 애정을 느꼈다. 그들, 무척 다른 동시에 아주 가까운 그들이 그녀 자신보다 더 훌륭하다는 데에 대한 감사 같은 것이었다. 생활이 윤택해지자마자 헤어졌던 전남편 마르크의 얼굴과 그녀를 몹시 사랑했던 또 다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제이 얼굴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생기를 주고 표정을 바뀌게 하는 유일한 얼굴이었다. 한 여자의 삶에 세 동반자들이 있었다는 것, 그것도 모두 좋은 동반자들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하지 않은가?

 

 

p. 49~50
아마 그 말은 사실이리라. 그녀는 늘 그의 말을 사실로 치부했다.

시간이란 마치 길들여야 할 한 마리 나태한 짐승 같지 않은가.

실제로 자신의 삶을 공격하는 일을 멈추고, 경솔하긴 하지만 오래 사귄 친구라도 되는 듯이 방어해야 하는 때가 있는지도 몰랐다. 벌써 그런 시기에 이른 것일까?

 

 

p. 58
자신이 그 연주회에 가려는 것인지 아닌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전화를 받은 시몽의 말, 시몽의 목소리에 따라 달라지리라.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고, 자신의 그런 망설임을 기분 좋게 음미했다.

그녀는 연주회 동안 시몽이 자기 손을 잡으려 들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이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두렵기도 했다. 언제나 그런 기대가 사실로 확인되면, 떨쳐 낼 수 없는 권태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녀가 로제를 좋아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로제는 모든 것이 너무나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그녀의 예상에서 조금 어긋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p. 60
그는 로제가 두렵지 않았다. 자기 입을 통해 그 여자에게 나쁜 소식이 전해지는 일 같은 건 결코 없으리라. 평생 처음으로 시몽은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이 처할 곤경 사시에서 자신이 막아서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p. 80~81
편지에다 그녀는 '빨리 돌아와요'라고 쓰지 않았던가. 그는 그 구절로 인해 자신이 지나친 기대를 품었다는 사실보다, 그 구절을 읽고 어리석게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확신에 찼었다는 사실이 더 유감스러웠다. 그는 잘못 알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불행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가, 이어 그런 잔인성을 뉘우쳤다. 그런 잔인성, 곧 복수에 대한 불합리한 욕구는 그녀 자신의 슬픔의 이면이었을 뿐, 시몽은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p. 95~96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날이 갔고, 그는 그 시간을 모았다. 아니, 그는 삶을 잃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p. 101
시몽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은 완벽한 어떤 것, 적어도 어떤 것의 완벽한 절반이었다. 이런 일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야 완벽하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줄곧 앞장서는 입장, 대개 혼자 애쓰는 입장이 되어 있었고, 이제 그 일에 지쳐 있었다. 그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시몽은 사랑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그 말이 유난히 특이하게 여겨졌다.

 

 

p. 129
그는 모든 것에, 심지어 남자의 이기심에도 한계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p. 139
그녀를 로제를 가리켜 '그'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그들 두 사람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p. 141
3대에 걸쳐 여자들의 머리 위에 감돌았던, 행복해져야 한다는 의지가 그녀의 머리 위를 감돌고 있었다. 당시에도 장애물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 이제 그녀는 새로 개척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직업을, 그리고 남자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추구해 온 그런 것들에 대해 그녀는 서른아홉 살이 된 지금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p. 143
그녀는 그를 제대로 평가해 준 적이 없었다. 항상 그가 상스럽고 천박하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그녀에게 그 자신의 가장 좋은 부분, 가장 견고한 부분을 내주었음에도, 여자들은 그랬다. 여자들은 모든 것을 요구하고 모든 것을 다 내주는 거처럼 보여서 완전히 마음을 놓게 만든 다음, 어느 날 정말 하찮은 이유로 떠나 버린다.

 

 

p. 149
그녀는 좀 더 울고 싶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싶기도 했다.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은 기분도.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프랑스에서는 원제 그대로, 미국에서는 <Goodbye Again>으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수(離愁)>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이수...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헤어짐에 대한 근심인데, 사전을 찾아보니 이별의 슬픔이라고 나온다. 아나톨 리트박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흑백영화는 대단한 출연진들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폴라(책에서는 폴) 역에는 잉그리드 버그만, 로제 역으로는 샹송으로 유명한 이브 몽땅, 그리고 필립(책에서는 시몽) 역으로는 안소니 퍼킨스가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은 영화였다. 

 

 

폴라가 시몽(필립)에게 그만연락하라고 했을 때, 시몽이 라이브 바에 앉아 술 마시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

Diahann Carroll의 "Say No More, it's Goodbye"

 

한 곡 더?!

Diahann Carroll의 "Love is Just a Word"

 

그리고 이 영화로 인해 더(?) 유명해진 브람스 교향곡 3번 Op.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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