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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나에대한열정 2021. 8. 1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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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The Noise of Time

 

 

책을 사놓고 책장에 있다는 거 조차 잊어버렸던 책이다. 아마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책인지 알았다면 바로 보았을 텐데 말이지.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산 책인데, 한 번에 한 권을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책을 샀을 때 바로 손에 잡지 않으면 이런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종종 책장들의 제목들을 둘러보는 습관도 생겼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리 두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책을 읽는 도중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야했고, 어느새 조지 오웰의 1984에 빠져있었고,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손수건 사이에 치약을 짜서 최루탄가스의 매움과 메스꺼움을 막아야 했던 시절,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하다가도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멈춰 서서 태극기가 보이던 곳을 향해 멈춰 서던 시절, 그게 당연했던 시절로 말이다. 

북한 사람들이 만화에서 늑대로 표현되던 시절, 모든 가요테이프 마지막 곡에는 음악의 결을 끊어버리는 건전가요라는 것이 꼭 실려 있어야 되었던 시절, 그런 것에 의문을 품어 보지 못했던 시절 말이다.

어느 날인가 뉴스에서 앵커가 울면서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다고" 저 아저씨 왜 울지? 그다음 날부터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그 채널이 없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던 만화영화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런. 그래도 그 이유를 물어볼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통폐합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언론이 탄압받던 그런 시절 말이다.

 

생각해보면, 시대의 소음은 계속 있었고, 계속 있을테지만, 얼마나 그 속에 노출되어 있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분명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독재의 시절이 있었고, 그 뒤를 이어받은 또 다른 모습의 독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피부로 느꼈던 것은 너무나 차이가 컸을 테니까.

 

책으로 들어가자. 계속 쓰면 무슨 말까지 할지 나도 나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체제하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 시대는 공장에 생산량을 할당하는 것처럼 예술작업을 하는 게 지시로 내려왔고, 조금이라도 실험적인 시도를 하거나 자신의 느낌을 살린다면, 그 예술가들은 '형식주의자'로 내몰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쇼스타코비치의 공연 <므첸스키의 맥베스 부인>을 스탈린과 당 관계자들이 보러 온다. 그런데 공연 중간에 스탈린이 보이지 않게 되고, 불안한 예감을 받는다. 다음날, <프라우다>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음악이 아닌 혼돈>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을 보게 된다.

 

프라우다에 대한 설명을 잠시 곁들이면, '진리'를 의미하는 프라우다는 당시에는 러시아 혁명세력의 기관지로 창간된 국영신문이며, 전국에 배포되는 일간지였다. 1991년에 소련 공산주의 권력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공산당 기관지로서 역할을 하던 신문이다. 

 

그런 신문에 자신의 음악이 '혼돈'이라고 실린 것이다. 그때부터 언제 제거될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쇼스타코비치는 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 옆에서 계속 대기 중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끌려가게 될 때, 잠옷 차림으로 그들을 맞는 것도 그렇지만, 그 모습을 자신의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어떤 행동이 가해질지 모르니까.

 

그렇게 지내는 중에, 빅하우스로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빅하우스는 스탈린 시대 소련의 비밀경찰 본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 후로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긴장을 하고 빅하우스에 간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라는데 일단은 안도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투하쳅스키와 어떤 관계인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그의 집에 갔을 때 다른 정치인들은 누구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받게 된다. 자신은 음악을 연주했을 뿐이고, 그곳에 정치인은 없었으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진실은 그게 아닐 거라고, 기억이 날 거라면서 이틀 뒤에 다시 보자고 한다. 그 순간 쇼스타코비치는 느끼게 된다. 이미 투하쳅스키는 체포되어 있는 상태이고,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지.

 

(책에서는 대원수 투하쳅스키라고만 표현이 나오는데, 투하쳅스키는 러시아 각지에서 반란군을 진압해서 그 공으로 붉은 군대의 최고위급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데 1921년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바르샤바까지 추격했다가 포위되어 패배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당시 정치장교였던 스탈린과 패배 원인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이것이 투하쳅스키가 스탈린에 의해 숙청되는 이유가 된다.)

 

이틀 뒤, 쇼스타코비치는 다시 빅하우스를 가서 검문소에 자신의 이름을 말했더니, 명단에 없다고 돌아가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순간에는 이것도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에게는 이 일로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리고 스탈린의 치하에서, 다음 정권을 이은 흐루쇼프의 체제하에서 어떻게 쇼스타코비치가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첫 문장: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 (이 책은 세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첫 섹션을 시작하기 전에 듣는 자, 기억하는 자, 술 마시는 자에 대한 기차역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분은 제외하고 첫 섹션을 시작하는 문장을 첫 문장으로 적는다.)

 

 

운명. 그것은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쓰는 거창한 단어일 뿐이었다. 삶이 당신에게 "그래서"라고 말했을 때,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운명이라 불렀다. (p. 23)

 

 

p. 45~47
'귀 있는 자는 들으시오.' 그는 늘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꽉 막힌 귀머거리라도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 무엇을 말하는지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결과가 어찌 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론적 몰이해뿐만 아니라 일신 자체를 겨냥한 세 가지 표현이 있었다. "작곡가는 소비에트 관객이 음악에서 무엇을 구하고 기대하는가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만으로도 작곡가 조합 회원 자격을 박탈하기에 충분했다. "소비에트 음악에 이러한 경향이 미칠 위험은 명백하다." 그 말은 그에게서 작곡을 하고 공연을 할 능력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교활한 재주로 장난치는 행위는 끝이 대단히 안 좋을 수 있다." 그 말은 그의 목숨을 빼앗아가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프라우다>의 사설이었다. 반발할 수 있는 순간적 판단이 아니라. 최고위층으로부터 내려온 정책 강령이었다. 다시 말해서 성서나 마찬가지였다.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에게 허용된 유일한 행동 방침은 공개 사죄를 하고, 과오를 취소하고,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어리석은 젊음을 주체 못 한 나머지 잘못된 길로 들어섰노라고 해명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진실하고, 대중적이며, 듣기 좋은 음악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즉각 소련의 민속음악에 몰두하겠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 케르젠체프에 따르면, 그가 결국 호의를 되찾을 길은 그것뿐이었다.

 

 

p. 61~62
그는 지난 2년간 변함없이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칭찬하던 비평가들이 갑자기 그 작품에는 단 한 가지도 장점이 없음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이들은 <프라우다>기사 덕분에 눈에 씌었던 콩깍지가 벗겨졌다면서 솔직하게 이전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들이 음악과 그 작곡가에게 얼마나 홀딱 속아 넘어갔던가! 드디어 그들은 형식주의와 세계주의와 좌파주의가 러시아 음악의 참된 본질에 얼마나 위험을 가하는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또한 이제 어떤 음악가들이 그의 작품에 공공연히 반대 발언을 하고 있는지, 어떤 친구와 지인들이 그와 거리를 두기로 했는지도 알아차렸다. 변함없이 차분한 태도로 그는 평범한 대중들로부터 쏟아진 편지들을 읽었다. 편지 대부분은 이제 막 그의 집 주소를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중 상당수는 그에게 제 구실도 못하는 귀를 잘라버리고, 그 김에 아예 머리통까지 자르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표현도 신문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가장 평범한 문장으로 실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오늘 인민의 적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연주하는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이런 말은 절대 우연히, 또는 최고위층의 승인 없이는 쓸 수 없는 말이었다.

 

 

p. 75
스탈린의 러시아에는 이 사이에 펜을 물고 작곡을 하는 작곡가 따위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두 종류의 작곡가만 있게 될 것이다. 겁에 질린 채 살아 있는 작곡가들과, 죽은 작곡가들.

 

 

p. 79~81
잠옷 바람으로 잠자리에서 끌려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
이것이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 중 하나였다. 거기 서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용감한 행동일까 비겁한 행동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닌, 그저 합리적인 행동일까? 그는 답을 찾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는 당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당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단순 명쾌한 문제였다. 그러나 '비당원 볼셰비키'로서 남들 눈에 자신이 온 힘을 다 바쳐 당을 돕는 모습으로 비치도록 했다.

그는 이중에 자크렙스키의 후임을 납득시킬 만한 것이 뭐라도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가 부분적으로라도 공산주의를 믿기는 했을까? 공산주의의 대안이 파시즘뿐이라면 당연히 믿는다. 그러나 그는 유토피아를, 인류가 완벽해질 가능성을 인간 영혼의 개조를 믿지 않았다. 레닌의 신경제정책이 있고 5년 후, 그는 <2천억 년 뒤에 지상천국이 올 걸세>라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마저도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p. 87~88
권력층이 말을 갖게 하라. 말이 음악을 더럽힐 수는 없으니까. 음악은 말로부터 도망간다. 그것이 음악의 목적이며, 음악의 장엄함이다.
그 표현은 또한 음악을 들을 줄 모르는 이들이 그의 교향곡에서 자기네가 듣고 싶은 것을 듣게 해 주었다. 그들은 종결부의 끽끽거리는 아이러니를, 승리의 조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승리 그 자체만을, 소비에트 음악, 소비에트 음악학, 스탈린 체제의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을 향한 충성스러운 지지만을 들었다. 그는 5번 교향곡을 포르티시모와 장조로 끝냈다. 그가 피아니시모에 단조로 끝냈다면 어땠을까? 이런 것에 한 생명이 - 여러 생명이 - 좌우될 수도 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일 뿐."

 

하나의 못이 다른 것을 몰아내듯이, 하나의 두려움이 다른 두려움을 몰아낸다. 그래서 고도를 올리는 비행기가 단단한 공기층을 들이받는 듯한 와중에, 그는 눈앞의 부분적인 공포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희생 제물이 되고, 산산조각이 나고, 즉시 잊히는 데 대한 공포, 공포는 보통 다른 감정들까지도 모두 몰아낸다. 하지만 수치심만은 아니다. 공포와 수치는 그의 배속에서 행복하게 같이 뒤섞여 빙빙 돌아갔다. (p. 91)

 

 

p. 92
"세상엔 좋은 보드카와 아주 좋은 보드카만 있을 뿐이다. 나쁜 보드카 같은 건 없다." 이것이 모스크바에서 레닌그라드까지, 아르한겔스크에서 쿠이비셰프까지 통하는 지혜였다. 그러나 미국산 보드카도 있었고, 이제 막 그가 알게 된 대로 그 술에 과일 향을 더하고 레몬과 얼음, 토닉 워터를 넣으면 칵테일에 보드카가 가려지면서 맛이 한결 나아졌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쁜 보드카 같은 게 있을지도 몰랐다.

 

 

p. 94~95
공포: 공포를 가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그들은 공포가 먹힌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어떻게 먹히는지도 알았지만 공포가 어떤 느낌인지는 몰랐다. 흔히들 하는 말로 "늑대는 양의 공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가 상트레닌스부르크의 빅 하우스에서 내려올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동안, 오이스트라흐는 모스크바에서 체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그에게 매일 밤 그들이 자신의 아파트 건물로 누군가를 데리러 왔다고 설명해주었다. 절대로 한꺼번에 잡아가는 법은 없었다. 희생자는 딱 한 명이었고, 이튿날 밤 또 한 명을 데려갔다. 남은 자들, 한시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공포심을 가중시키는 시스템이었다. 결국 그의 아파트와 건너편 아파트에 있는 이들만 제외하고 모든 입주민이 끌려갔다. 이튿날 밤 경찰차가 다시 도착했고, 아래층 문이 꽝 여닫히는 소리와 복도를 따라 걷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발자국 소리는 다른 아파트로 갔다. 오이스트라흐는 바로 그 순간부터 줄곧 두려워하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두려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p. 100~101
그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대중적인 성공이었다. 또한 그의 인생 최대의 굴욕이었다. 그는 자기혐오와 스스로에 대한 경멸감 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완벽한 덫이었고, 두 부분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한쪽 끝에는 공산주의자들, 반대편 끝에는 자본주의자들이 있고 그 중간에 그가 있었다. 문들이 그의 앞에서 잇달아 열리고 그가 지나가자마자 닫히듯이, 어떤 실험실의 환히 불 켜진 복도를 종종걸음을 쳐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독재가 온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뒤집어놓았다는 것은 진부한 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1936년부터 1948년까지 12년간, 그는 '위대한 조국 해방 전쟁'(러시아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컫는 표현) 때 말고는 안전하다고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흔히들 하는 말로 그 전쟁은 구원으로 가는 재앙이었다. 수백만 명에 더해 수백만 명이 죽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다들 너 나 없이 고통을 겪었고, 그 점이 일시적이나마 그에게는 구원이었다. 독재는 편집증적이었을지 몰라도 꼭 멍청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재가 어리석기까지 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원칙이 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독재는 대다수 사람들의 어떤 부분들-약한 부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여러 해에 걸쳐 신부들을 죽이고 교회 문을 닫았지만, 군인들이 신부들의 축복을 받고서 더 굳세게 싸운다면 잠시 써먹기 위해서라도 신부들을 도로 데려올 것이다. 그리고 전시에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음악이 필요하다면, 작곡자들 또한 작업에 투입할 것이다.

 

 

p. 102~103
그 모든 것이 어두운 코미디였다. 더 중요한 질문을 모호하게 흐리는 것이기는 했지만, 푸시킨은 모차르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천재와 악마
둘은 양립할 수 없다. 동의하는가?

 

 

p. 105~106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결점은 있다 해도 기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박박 닦는 정도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닦고, 닦고, 또 닦아보라. 그 모든 낡은 러시아적인 것들을 싹 다 씻어내고 반짝반짝 새로운 소비에트적인 것을 그 위에 칠해보라.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칠하자마자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할 테니까.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비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고, 소비에트인이 된다는 것은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었다. 권력층은 이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인구 중에서 필요한 만큼 죽여 없애고 나머지에게는 선전과 공포를 먹이면 그 결과로 낙관주의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 어디에 논리가 있는가? 그들이 그에게 여러 가지 방식과 표현으로, 음악 관료들과 신문 사설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대로, 그들이 원했던 것은 '낙관적인 쇼스타코비치'였다. 용어상 또 하나의 모순이었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장소들 중 하나-정말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둘 다 있어야 하는 곳-는 바로 가정이었다. 그래서 예를 들면 그는 니타를 사랑했지만(낙관주의) 자신이 좋은 남편인지는 알 수 없었다(비관주의). 그는 걱정이 많은 사랑이었고, 걱정 많은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니타가 일하러 갈 때면,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집에 언제 오느냐고 묻는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그는 그런 것이 짜증 나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불안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자기 아이들을 사랑했지만(낙관주의) 좋은 아버지인지에는 자신이 없었다(비관주의). 가끔씩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비정상적이다 못해 병적이라고 느꼈다. 삶은 흔히들 하는 말로 들판을 거니는 산책이 아니다.

 

 

p. 109
갈리아와 막심은 벌을 받는 일이 드물었다. 짓궂은 짓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당장 부모는 극도의 불안 상태에 빠졌다. 니타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이들을 질책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는 줄담배를 피우며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이러한 고뇌에 찬 무언극은 아이들에게 체벌 못지않은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나라 전체가 징벌 방이었다. 그러니 평생 질리도록 보게 될 것을 아이들에게 굳이 일찍부터 알게 해 줄 필요가 있겠는가?

 

 

p. 111~112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는 가망 없는 실패자가 아니며, 적절히 지도를 받기만 한다면 명쾌하고 사실주의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최고위층의 견해였다. 레닌이 천명했듯이 예술은 인민의 것이었다. 영화는 오페라보다 소비에트 인민에게 훨씬 더 쓸모 있고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는 이제 적절한 지도를 받았고, 그 결과 1940년 그의 영화음악에 대한 분명한 보상으로 붉은 노동 기를 받았다. 그가 옳은 길을 계속 걸어간다면, 이는 틀림없이 앞으로 주어질 수많은 영예의 시작이 될 것이었다.

 

 

p. 124~125
물론 러시아가 독재자를 처음 겪어본 것은 아니었다. 아이러니가 그렇게 잘 발달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러시아는 코끼리들의 고향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러시아는 모든 것을 발명해냈다. 왜냐하면...... 음, 우선 러시아니까. 러시아에서는 환각이 일상이었다. 두 번째로, 이제는 역사상 사회적으로 가장 진보한 나라인 소비에트 러시아니까. 거기에서는 뭐든 제일 처음 발견되는 것이 당연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에는 - 그 자리에서 죽게 될 테니-위장을 해야 했다. 유대 민속음악에서는 절망을 춤으로 위장한다. 그래서 진실의 위장은 아이러니였다. 독재자의 귀는 아이러니를 알아듣도록 맞춰져 있지 않으므로, 이전 세대 -혁명을 이루었던 그 늙은 볼셰비키들-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 중 그토록 많은 이들이 죽어간 것도 어느 정도는 그 때문이었다. 그의 세대는 본능적으로 아이러니를 더 잘 알았다. 

 

 

p. 126~128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젊은이는 아이러니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 나이 대에는 아이러니가 성장을 막고 상상력을 저해한다. 남을 믿고,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며,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이에게 솔직히 대하는, 활기차고 개방적인 마음 상태에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다 세상사와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아이러니의 감각을 발전시킬 때가 온다.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진행 방향은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로 가는 것이다. 아이러니의 감각은 비관주의를 누그러뜨려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기는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어서, 아이러니는 갑작스럽게 이상한 방식으로 쑥 자라났다. 버섯처럼 하룻밤 새, 암처럼 무시무시하게.

냉소주의는 파괴자와 사보타주 주동자들의 언어로 통했기에, 그것을 쓰면 위험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는-어쩌면 가끔씩은, 그는 그러기를 바랐다-시대의 소음이 유리창을 박살 낼 정도로 커질 때조차-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 음악, 그의 가족, 사랑, 사랑, 그의 가족, 음악, 중요도는 바뀔 수 있었다. 아이러니가 그의 음악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 잘못된 귀들이 듣지 못하도록 소중한 것을 숨겨서 통과시킬 수 있는 비밀의 언어로 음악이 남아 있는 한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 암호로만 존재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말하고 싶어 좀이 쑤셨다.

사랑들을 충분히 공포에 몰아넣는다면 그들은 뭔가 다른 것, 축소되고 줄어든 것이 되었다. 즉, 단지 생존을 위한 기술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경험한 것을 불안만이 아니라 짐승 같은 공포인 경우가 많았다. 사랑의 최후의 날이 닥쳤다는 공포.

나무를 쪼개면 파편이 된다. 사회주의 건설자들이 즐겨하는 말이다. 하지만 도끼를 내려놓고 보니 목재 야적장 전체에 온통 나무 부스러기밖에 남지 않았다면?

 

 

p. 129~132
그보다는 인간의 환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그 환상들은 무너져 내리고 말라죽어버렸다. 영혼 깊숙이까지 닿는 치통처럼,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라면 뽑아 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환상은 죽었을 때조차도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썩어가며 악취를 풍긴다. 그 맛과 냄새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는 내내 그것을 끌고 다닌다. 그 역시 그러했다.

셰익스피어는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이 핏물에 무릎까지 담근 독재자들을 탁월하게 묘사해냈지만, 그래도 조금은 순진한 데가 있었다. 그의 괴물들에게는 의심, 나쁜 꿈, 양심의 가책, 죄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죽인 자들의 유령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실제 공포 아래서는,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이 뭐란 말인가? 나쁜 꿈 따위가 뭣인가? 다 감상주의, 헛된 낙관주의, 세상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기보다는 우리가 바랐던 대로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불과했다. 나무를 쪼개어 파편이 튀게 만든 자들, 빅 하우스의 책상에 앉아 벨로모리를 태우는 자들, 명령서에 서명을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서류철을 닫으며 한 생명을 끝내버리는 자들, 그들 중 악몽을 꾸거나 죽은 자의 유령이 일어나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본 자가 과연 몇이나 되었겠는가. 

소련 사람들에게는 프롤레타리아의 순수성이 나치의 아리안족 순수성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들을 '낙관적인 쇼스타코비치'를 요구했다. 온 세상에 피와 가축 오물이 목까지 차올라 있다 해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관적이고 신경질적인 것이 예술가의 천성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미 예술가 아닌 예술가들이 너무나 많다! 체호프의 말처럼 "커피를 내왔는데 그 안에서 맥주를 찾으면 안 된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것을 정의하는가? 그는 항상 자신의 예술이 반귀족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그가 부르주아 코즈모폴리턴 엘리트 층을 위해 작곡을 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를 비난하는 자들이 그에게 바라듯, 교대 근무에 지쳐 마음을 달래주는 위안거리가 필요한 도네츠 광부들을 위해 작곡을 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작곡을 했고, 누구를 위해서도 작곡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출신과 무관하게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장 잘 즐겨주는 이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다. 들을 수 있는 귀들을 위해 작곡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참된 정의는 편재하는 것이며, 예술의 거짓된 정의는 어느 한 특정 기능에 부여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p. 135~136)

 

p. 137
스탈린은 베토벤을 매우 좋아했다. 스탈린이 그렇게 말했고 많은 음악가들이 그 말을 따라 했다. 스탈린은 베토벤이야말로 진정한 혁명가였기에, 산처럼 숭고했기 때문에 좋아했다. 스탈린은 숭고한 것이면 뭐든지 다 좋아했고, 바로 그 때문에 베토벤을 좋아했다. 사람들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는 귀로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p. 141~142
그 전해에 소련 영사관에서 일하는 한 젊은 여자가 창문에서 뛰어내려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회의 기간 동안 매일 한 남자가 '쇼스타코비치! 창문으로 뛰어내려라!'라고 쓴 팻말을 들고 월도프 아스토리아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며 시위를 했다. 원한다면 자유를 찾아 몸을 던질 수 있도록, 러시아 대표단이 머무는 건물 주변에 그물을 쳐놓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그는 회의가 끝날 무렵에야 유혹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뛰어 내린다면 틀림없이 어떤 그물도 다 놓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니,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솔직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뛰어내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보도를 노리지 않을 것이다. 수년 동안 그가 몇 번이나 자살하겠다고 위협했던가? 셀 수도 없다. 그리고 몇 번이나 실제로 시도했던가? 한 번도 없었다. 자살할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어도 진심으로 자살하고픈 심정일 수 있다면, 그는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두 번은 일을 해치울 약을 사기까지 했지만, 그 사실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눈물겨운 몇 시간 동안의 말다툼 끝에 약을 빼앗겼다. 그는 자살하겠다고 머어니를, 타냐를, 그다음에는 니타를 협박했다. 모두 완벽하게 어린애 같은 짓이었지만 한편으로 모두 완벽하게 진심이었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이야기가 진짜인가 여부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였다. 이야기가 점점 더 퍼질수록 더 사실이 된다는 것도 맞는 얘기였지만. (p. 153)

 

 

p. 157~158
그들은 소련에 관한 단순한 사실 한 가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에서는 진실을 말하고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권력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안다고 생각했고, 자기가 당신의 처지라면 이렇게 했을리라 믿는 대로 당신이 싸우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당신의 피를 원했다. 체제의 사악함을 증명해 줄 순교자를 원했다. 그러나 순교자가 될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당신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있어야 그 체제가 진짜로, 끔찍하게, 잔혹하게 사악하다는 것이 입증된단 말인가? 더, 늘 더 많이 필요했다. 그들은 예술가가 야수와 공개적으로 싸우며 모래를 피로 적시는 검투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그들이 요구하는 바였다. 파스테르나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전한 죽음, 진지하게"였다. 그는 이러한 이상주의자들을 되도록 오래 실망시키려고 애썼다.
이 친구를 자칭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권력층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깨닫지 못했다. 아무리 많이 주어도 더 원했다. 모두들 항상 그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에게서 원했다. 그러나 그가 그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오직 음악뿐이었다.
만사가 그렇게 단순하기만 하다면야.

 

 

p. 161~162
전쟁 중, 쿠이비셰프와 모스크바 사이의 발진티푸스가 들끓는 완행열차에서 그는 손목과 목에 부적으로 마늘을 걸고 있었다. 그것들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제는 마늘을 언제까지나 걸고 다녀야 하게 되었다. 발진티푸스 때문이 아니라 권력층, 적들, 위선자들, 뜻은 좋은 친구들 때문이었다.

그는 일어서서 권력층에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그들의 용기와 도덕적 고결함을 존경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가 그들을 부러워하는 이유 중에는 그들이 죽어서 살아 있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점도 있었으므로, 복잡한 문제였다.

이러한 순교자들은 홀로 죽지 않았다. 그들 주위의 많은 이들이 그들이 만든 영웅주의의 결과로 파괴되었다. 그래서 분명할 때조차도 간단치가 않았다.

물론 반대편으로도 비타협적인 논리가 흘렀다. 당신이 몸을 아낀다면 주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도 구하는 셈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을 테니,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다. 그리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도덕적 타락을 피할 가능성 또한 없었다.

 

 

 

"삶은 들판을 산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햄릿에 관한 파스테르나크의 시 마지막 줄이기도 했다. 그 앞줄은 이러했다. "나 혼자뿐이다. 내 주위 사람들 모두 어리석음 속에 익사했다." (p. 164)

 

 

p. 167~168
레닌은 음악이 기분을 처지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스탈린은 자기가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할 줄 안다고 여겼다.
흐루쇼프는 음악을 경멸했다.

이중 어느 것이 작곡가에게 최악일까?

어떤 질문에는 답이 없다. 아니면 적어도 죽어서야 질문이 멈춘다. 흐루쇼프가 말했듯이 죽음은 꼽추도 고친다. 그는 꼽추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꼽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질문하는 꼽추, 그리고 어쩌면 죽음이 질문하는 자만이 아니라 질문까지도 고쳐줄지 모른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 보면 비극은 소극(笑劇)처럼 보인다.

 

 

어쩌면 용기는 아름다움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여인도 나이를 먹는다. 그녀에게는 사라져 버린 것만 보인다. 다른 이들 눈에는 남은 것만 보인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잘 버텨냈다고, 굴복하지 않았다고, 신경질적인 겉모습 아래 굳은 심지가 있었다고 축하했다. 그에게는 사라진 것만 보였다. (p. 171)

 

 

p. 180
다른 모든 것이 다 실패했을 때, 세상에 허튼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일 때에도 그는 이것만큼은 고수했다. 좋은 음악은 언제나 좋은 음악이고, 위대한 음악은 아무도 망가뜨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p. 186
그들은 당신이 공모하기를, 순응하기를, 타락하기를 원했다.

 

 

p. 188
권력층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저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승강기 옆에서의 겁에 질린 기다림과 뒤통수에 박히는 총알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러나 권력층은 그에게서 관심을 놓지 않았고, 여전히 손을 뻗쳐왔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항상 손을 붙잡힐 거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예전에는 죽음이 있었다. 지금은 삶이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바지에 똥을 지렸다. 지금은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허용되었다. 예전에는 명령이 있었고 지금은 암시가 있었다...... 예전에 그들은 그의 용기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했고, 이제는 그의 비겁함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했다. (p. 190)

 

 

p. 193
자유의 공기를 숨 쉬면서 그가 단 한 번이라도 공개적으로 항의의 말을 한 적이 있던가? 경멸할 만한 침묵이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를 작곡가로 존경하는 만큼 사상가로서의 스트라빈스키는 경멸했다. 어쩌면 그것이 개인적 정직성과 예술적 정직성에 대한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몰랐다. 개인적으로 부정직하다 해서 예술가로서도 정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후세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가끔씩 그는 모든 것에는 다른 판본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p. 195)

 

 

p. 196~197
사람들은 그에게 명예를 비처럼 뿌려주면서, 또한 그의 속을 채소로 가득 채웠다. 이제 그에 대한 공격이 얼마나 교활하게 달라졌는가. 그들은 미소 띤 얼굴로 보드카 잔을 들고 다가와 제1서기가 복통을 일으킨 데 대해 동정 어린 농담과 아첨, 감언이설과 침묵과 기대를...... 가끔 그는 술을 마셨고, 가끔은 집에 돌아가서, 혹은 친구의 아파트에 가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깨닫고는 자기혐오로 눈물을 흘리다가 어느새 흐느끼고 오열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가 거의 매일같이 그라는 인간이 된 것을 멸시하는 지경까지 왔다. 그는 오래전에 죽었어야 했다.

 

 

p. 200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별장에 가면 제일 먼저 우편이 믿을 만한지 확인해보려고 자기 앞으로 엽서부터 보냈다. 때로는 이런 행동이 살짝 도를 넘을지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넓은 세상이 통제 불가능하게 된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만이라도 확실히 통제해야 한다. 그 영역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그는 타고난 천성이 허락하는 만큼은 용감했지만, 양심은 항상 더 많은 용기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p. 217)

 

 

p. 219
이제 드디어 엄청난 공포가 끝나고 나니 그들은 그의 영혼을 요구했다.

 

 

p. 224~225
영혼 속 깊숙이 뭔가가 사라져 버렸고, 남은 것은 -뭘까? - 어떤 전략적인 교활함, 세상 물정 모르는 예술가인 척할 수 있는 능력,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자신의 음악과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결심뿐이었다. 그는 드디어 이렇게 생각했다 - 생기와 결의가 다 빠져나가버려서 기분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의 기분으로 - 어쩌면 이제 오늘 치러야 할 대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신부에게 항복하듯 포스펠로프에게 항복했다. 아니면 보드카에 흠뻑 취한 반역자가 총살형 집행대로 향하듯이. 자기 앞에 놓인 서류에 서명하면서 물론 자살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도덕적으로는 자살을 하는 중인데 육체적인 자살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약을 사다가 숨겨놓고 삼킬 용기가 없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보다 이 시점에 와서는 자살에 필요한 자존감조차 없었다.

 

 

p. 227~228
그러니까 그는 겁쟁이였다. 그래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 자리를 빙빙 돈다. 그래서 그는 남은 용기를 모두 자기 음악에, 비겁함은 자신의 삶에 쏟았다.

그러나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 - 총을 꺼내고, 폭탄을 던지고, 기폭 장치를 누르고, 독재자를 없애는 그 순간 동안만.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겁쟁이가 되려면 불굴의 의지와 인내, 변화에 대한 거부가 필요했다 - 이런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용기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 미소를 지으며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이러니의 즐거움은 아직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를 알았다. 귀가 있는 이들은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하는 식대로만 이해하려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가 어떻게 비쳤을까? 그런 이들이 어떻게 그를 비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제 겁에 질린 얼굴이 공식 차량을 타고 지나쳐갈 때, 길가에 서 있는 젊은 시절의 그에게는 그가 어떻게 보일까? 이런 것이 우리를 위해 삶이 구상하는 비극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p. 233)

 

 

p. 237
폭군들도 변했다. 어쩌면 양심은 더는 진화의 기능이 없고, 그래서 이종 번식을 하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현대 폭군들의 내면으로 뚫고 들어가 겹겹이 파고들어 보라. 그러면 결은 바뀌지 않았고, 화강암 위를 화강암이 덮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양심을 찾아낼 동굴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p. 239
그는 한편으로는 그가 그 서한의 내용에 동의했다고 아무도 믿지 않기를-아무도 믿을 수 없기를-바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었다. 친구와 동료 음악가들은 그와 악수하기를 거부하고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아이러니에도 한계가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배신했고, 남들이 여전히 그에 대해 품고 있는 선의를 배신했다. 그는 너무 오래 살았다.

또한 그는 인간 영혼의 파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삶은 흔히들 말하듯 들판을 거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셋 중 한 가지 방식으로 파괴될 수 있다. 남들이 당신에게 한 짓으로, 남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게 만든 것으로, 당신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한 짓으로, 셋 중 어느 것이든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세 가지가 다 있다면 그 결과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겠지만.

 

 

아이러니에 등을 돌리면 그것은 냉소주의로 굳어진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어디에 쓰겠는가? 냉소주의는 영혼을 잃은 아이러니였다. (p. 251)

 

 

p. 257
그가 바랐던 것은 죽음이 그의 음악을 해방시켜주는 것, 그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 것이고, 음악학자들이 논쟁을 계속한다 해도 그의 음악은 자기 힘으로 서기 시작할 것이다. 전기뿐 아니라 역사도 희미해져 갈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교과서 속의 말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면 - 여전히 들어줄 귀가 있다면 - 그의 음악은...... 그냥 음악이 될 것이다. 작곡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 1941년 독일이 레닌그라드를 봉쇄했을 당시 그곳에 있었던 쇼스타코비치는 전쟁의 참혹함을 보고 7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의 일부를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의 모습.

 

 

※ 쇼스타코비치를 다시 살려놓은 교향곡 제5번, 1937년 러시아 혁명 20주년 기념하며 만든 곡.

일드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남주가 이 곡에 맞춰 손을 휘젓으며 심취해서 듣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함 포템킨>의 배경음악이기도 하다. 1925년 작품인 <전함 포템킨>은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에 개봉된 영화이다. 러시아 포템킨호의 해군들의 반란 이야기를 다른 전쟁영화인데, 군의관이 썩은 고기에서 기생충은 씻어내서 먹으면 된다는 소리를 하는 장면에서 속이 뒤집혔던 기억이 있는......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소련 작곡가들의 곡들이 금지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에 대학가에서 '혁명'이라는 부제로 이 5번 교향곡이 유행을 하였다. 데모하다가 학교에서 한 번 쫓겨난 과외선생님 덕분에 처음 들었던 곡. 늘 그 시간에는 공부가 아니라 질문들을 받았고, 이런 훌륭한 곡들을 알 수 있었다. 좋은 시간. 감사할 뿐.

 

※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이 곡은 내가 좋아하는 스테판 하우저의 버전으로 올려본다.

처음 이 왈츠를 들었을 때 울었던 기억이 있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어쭙잖은 마음이었을 테지만... 굉장히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데 그 마음을 조금은 덜어준 연주가 바로 하우저의 공연이었다. 저 느끼한(?^^), 사실은 굉장히 섹시한 스테판 하우저의 첼로 소리가 이 곡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도와줬다. 그래서 많은 버전 중에 하우저의 연주로.

 

이 곡은 아마 쇼스타코비치는 모르더라도 익숙한 곡일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내 기억에는 두 장면 정도가 있는데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는 이병헌과 이은주가 주연으로 나왔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은주가 이병헌에게 왈츠 출 수 있냐고 묻는 장면부터 이 곡이 흐른다. 그리고 같이 춤을 추고... 연애세포 깨어나게 하는 간질간질한 장면에서 나온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공포스러운 장면에서 등장한다. 심은하가 여주로 나온 <텔미 썸씽>. 공포물인지 모르고 영화관에 갔다가 손가락 사이로 보았던 영화이다. 염정아가 레코드 가게에서 심은하에게 이 곡을 들려주는 장면인데... 이런 느낌의 곡이 긴장감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걸 처음 느끼게 해 준.

 

※ 이탈리아 혁명가를 그린 1955년 영화 <등에(Gadfly)>에 삽입되었던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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