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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끝이 보이지 않는 오랜 고독에 대한 변명, 노트 온 스캔들, Notes on a Scandal (2006)

나에대한열정 2021. 8. 1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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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온 스캔들, Notes On A Scandal (2006)

드라마, 스릴러 / 영국 / 92분
감독: 리차드 이어
주연: 주디 덴치(바바라 코베트 역), 케이트 블랑쉐(쉬바 하트 역)

 

이 영화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 <클로저 Closer>, 데이빗 맥킨지 감독의 <어사일럼 Asylum>의 원작자인 패트릭 마버의 극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클로저>에서 주드로가 출근길에 마주쳐서 한눈에 빠져버린 나탈리 포트만이나,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만난 줄리아 로버츠에게 또 다른 느낌으로 혹해버리는 것이나, <어사일럼>에서 정신과 의사의 아내인 나타샤가 환자인 마튼 초카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빠져드는 상황처럼, 이 영화에서도 그런 혹함이 있다. 

다만 조금 다르다면 이성이 아니라는 점에 있을까. 원인이 조금 다른 곳에 있다고 할까. 어쨌든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은 부분들을 건드려 주는 게 이 작가가 던져주는 묘미이다. 어쩌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듯한, 그러나 쉽사리 드러내기에는 인식이 두려운 우리 저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책임이 시작된다."는 자끄 데리다의 표현처럼 윤리라는 것은 그렇게 한 순간 우리 앞에 존재한다. 내가 그것을 찾기 전에 말이다.

 

영화로 들어가보자.

 

영화는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여자의 뒷모습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나에게 늘 자기 비밀을 털어놓는다. 내 비밀은 누구한테 털어놓지? 너뿐이란다.

 

이런 내레이션과 함께 그 비밀들이 쏟아져있는 일기장들의 모습이 화면 가득 보인다. 바바라가 비밀을 채워놓은 일기장들. Philip Glass의 "First day of school"의 음악이 흐르면서 보여주는 이 화면은 왠지 모르게 섬뜩하기까지 하다. 

 

 

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으로 있는 바바라. 아이들이 마귀할멈이라 칭하기도 하는 바바라는 시니컬한 데다 웃음도 없다. 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미술 선생님으로 온 쉬바 하트에게 온통 시선이 꽂혀있다. 그녀가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 머리 모양은 어떤지 그리고 그녀 주위에서 어떤 사람들이 말을 걸고 있는지, 그녀가 이상하다고 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던 중, 미술실에서 아이들이 싸우는 데, 쉬바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 상황을 바바라가 해결해준다. 

그 뒤로 조금은 가까워진 두 사람.

 

쉬바 하트는 바바라를 집에 초대한다. 식구들이 같이 있는 주말이지만, 라자냐나 해 먹을 거라면서, 가벼운 부담 없는 초대처럼. 순간 바바라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날의 일기에는 이런 글귀가 들어간다.

 

북극처럼 삭막한 내 달력에 즐거운 깃발이 꽂힌 날

 

꾸안꾸는 기본이라면서, 그날 입을 옷을 새로 사고, 머리도 하고, 꽃을 들고 쉬바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는 사람을 보고 순간 집을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생각지도 못한 나이 든 남자가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쉬바의 집에 오기 전에는 상냥하고 젊은 남편과 완벽한 두 아이를 상상했는데, 전혀 아닌 것이다. 남편은 나이가 많고, 딸은 버릇도 없는 데다가, 아들은 다운증후군이었다. 그런 가정에 쉬바가 너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 바바라. 하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비밀은 늘 일기에만 있을 뿐.

 

바바라는 쉬바와 친구가 된 날이라면서 그날은 골드스타 데이라고 한다. 바바라가 행복을 느끼는 날에는 금빛 별 스티커가 붙어 있다. 몇 개씩 붙어있는 날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바라는 쉬바가 스티븐 코놀리라는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장면을 보게 된다. 어쩔 줄 몰라하던 바바라는 쉬바를 불러내서, 사실대로, 있는 정황을 말하라고 한다. 자신의 행위가 옳지 못한 것을 알지만, 쉬바는 열심히 자신이 상황을 변호하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바바라에게는 새해까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분노에 눈이 먼 바바라는 이 상황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부분까지만 보았을 때에는 왜 분노라는 감정이 생기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바바라는 자신이 이 비밀을 지켜줌으로 인해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쉬바가 자신에게 종속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쉬바에게는 비밀을 지켜줄 테니, 관계를 정리하라고 한다. 바바라의 말에 쉬바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약속한다.

 

쉬바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서 바바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한다. 바로 바바라의 고양이 이름이 적힌 액자를 선물한 것이다. 바바라에게는 유일한 가족인 고양이. 바바라는 쉬바에게 '네가 가장 좋은 친구'라는 표현을 쓰지만, 쉬바의 표정과 행동은 불편함이 드러날 뿐이다. 자신의 목덜미를 만지며 겨우 그 순간을 지나가는데... 바바라는 상대에게서 그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쉬바는 스티븐 코놀리와 관계를 끝내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러다가 다시 바바라에게 들키게 되고, 이번에도 역시 바바라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늘 쉬바의 옆에는 바바라가 있게 되는데.

 

어느 날, 바바라의 고양이의 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지게 되고, 병원에서는 안락사를 권한다. 같이 지내던 고양이의 죽음을 앞두고 바바라는 쉬바에게 찾아간다. 고양이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 쉬바는 가족들과 아들 벤이 처음으로 공연하는 곳에 가려고 차로 막 이동하려는 중이었다. 둘이는 실랑이를 벌이고, 바바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하지만 쉬바는 연락하겠다고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가버린다. 

 

고양이를 묻고 집에 혼자 있던 바바라에게,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는 한 남자 선생님이 찾아온다. 쉬바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말이다. 말인즉, 쉬바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지 좀 떠봐달라는 것이었다. 바바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당신은 쉬바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면서. 들리는 소문에 쉬바는 많이 어린 사람을 좋아한다며. 그 남학생의 이름을 거론한다. 자신에게 꼬리를 쳤다고 생각한 그 남자는 얼굴에 이미 분노가 가득하다. 바바라는 그 남자가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지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며칠 후, 결국 일이 터진다. 스티븐 코놀리의 엄마가 쉬바의 집으로 와서 집을 뒤집어놓았고, 그때 같이 있었던 바바라는 이번에도 모르는 척 다정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학교에도 이미 소문이 난 상태이고, 기자들이 온통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 되자, 쉬바의 남편은 당분간 떨어져 있고 싶다는 표현을 한다. 그리고 쉬바는 바바라의 집에서 살게 되는데...

 

바바라가 마트에 간 사이에, 쉬바는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한다. 수지 앤 더 밴지스의 보컬 수지 수처럼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고 입술을 붉게 칠한다. (스티븐 코놀리랑 쉬바의 작업실에서 관계를 가지고 나서, 쉬바가 수지 앤 더 밴지스의 LP판을 보면서, 한 때 그 보컬을 숭배했다는 표현을 한다. 그리고 그 배경 음악에 수지 앤더 밴지스의 "Dizzy"가 흘렀다.) 쉬바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수지 수처럼 화장을 하면서 말이다...

 

Siouxsie and the Banshees의 "Dizzy"

 

바닥에 떨어진 금색 별 스티커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쉬바는 쓰레기통에 구겨진 종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쓰여있던 글을 보더니, 바바라의 온 집을 뒤지기 시작하는데......

바바라가 돌아왔을 때, 이미 웬만한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쉬바는 바바라에게 울면서 난리를 치지만, 바바라는 의외로 너무 담담한 태도였다. 

 

쉬바 같은 사람들은 외로움이 뭔지는 알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오랜 고독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빨래방이나 서성거리며 주말을 보내는 게 어떤 건지, 스킨쉽에 굶주려서 버스 차장의 손만 스쳐도 흥분되는 감정이 어떤건지 모른다. 이런 고독에 대해 쉬바같은 사람들은 전혀 알리가 없다. 

 

결국 쉬바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고, 교도소로 가게 된다. 그리고 바바라는 새로운 일기장을 다시 사가지고 온다.

 

영화의 첫 시작 장면이었던 벤치에 쉬바의 신문기사를 읽고 있는 한 여자가 앉아 있다. 신문에 있는 그 여자와 같은 학교에서 일했다면서 바바라가 그녀의 옆에 앉는다. 그렇게 바바라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간다.

 

자신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면서 상대에게 다가간다는 것. 바바라는 쉬바이전에도 또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경험을 한다. 쉬바가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을 넣으려고 한다.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면서도 다시 혼자인게 싫어서 누군가를 또 채운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안된다. 참으로 버겁고 어렵다.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가면서 흐르는 음악.

Philip Glass "I knew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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