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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절린 밀러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 - 인에이블러의 고백
인에이블러 Enabler
상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면서 스스로는 자존감을 높이고, 상대의 독립을 막는 사람
p. 23
마침내 내가 조장하는 아내, 즉 '인에이블러'임을 인식하게 되자, 나의 조장 행위가 남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버릇은 다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스며들었고, 특히 내 아이들을 조장하고 있었다. 조장한다는 것은 내 예상보다 훨씬 흔한 일이고, 중독성 물질을 남용하는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 31
나는 그들의 삶에 포함된 거친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으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다. 왜 그랬을까? 인에이블러였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그들의 별난 행동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사실을 괴롭고 곤혹스러운 마음으로 인정한다. 참담한 인정이다.
p. 34
내가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있고
나는 유용한 사람이며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느끼는 걸 좋아한 것이다.
p. 43
인에이블러들에 의한 의존은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기본적인 상호 교환과는 다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건강한 상호 의존과 기생적인 의존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가정생활에서 그 차이점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p. 46
의존자들은 해결책을 찾느라 몸부림치면서 대단히 힘찬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정하고 결심하며 실천하기를 겁내기 때문에, 현실적인 탈출구를 찾으려는 진짜 추진력은 없다. 의존자들은 대체로 자기가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 독특한 이유를 만들어내지만 그 설명에는, 실은 변화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혹은 인에이블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p. 47
관념주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인생이 우리가 인식하는 그대로라면, 인생을 풍부하고 자애롭다고 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낙관적인 태도는 행복을 자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만일 '네가 보는 것이 네가 얻는 것이다'라면,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한 선택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이 철학은 매우 간단하다.
인생을 보람 있는 경험으로 보는 사람들은
더 즐겁게 살 수 있다.
반면에 인생을 고통스럽고 어려운 과정으로 보는 사람들은
모든 것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발견한다.
p. 49~51
큰 변화가 잦은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재앙이 언제든 닥쳐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평생 간직하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부모의 생활 방식을 마음에 깊이 새긴 나머지, 이와 다른 환경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행복하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듯한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을 생활에 꼭 필요한 본질적 요소를 빼앗긴 희생자 같다고 느낀다. 이들은 종종 수치심이나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을 키우는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간직하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혼란과 의혹은 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의존자들은 자기 트라우마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자신에게 엮이게 하고, 너그럽고 동정심 넘치는 사람들이 자신을 저버리기 어렵게 만든다. 이것이 인에이블러가 깨뜨리기 매우 힘든 주문인 셈이다. 어떤 면에서는 의존자들도 이것을 알고, 자신의 배우자나 부모, 아이들 혹은 친구들을 영원히 얽매이게 할 수도 있다.
의존자들은 고통에 빠져 옴짝 달짝 못 하는 데다 앞으로 나아갈 능력이 없어 보이고, 진짜 괴로워하는 것 같고, 그들의 상황은 너무나 견디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존자들의 문제에 쉽게 끌려들어 간다. 상습적인 인에이블러들은 본능적으로 의족자들에게 집착할 테고, 결국은 극적인 사건이 끊임없이 지속되도록 도울뿐이다.
p. 54
우리는 확립된 행동 양식을 수용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과는 항상 잇따른다. 어떤 특정한 행동의 결과를 견디고 싶지 않으면, 그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자기 세계의 현실에 적응하지 않을 때 얻게 될 결과를 방지하려면 그 현실에 전적으로 참여하면 된다. 의존자들은 경기를 관람만 하는 운동선수와 같다. 하지만 대신 경기를 뛰어줄 사람이 없다면 의존자들도 의존자로만 남아 있을 순 없다.
p. 55
인에이블러와 의존자 양쪽에 가장 큰 위협은 조장-의존 관계가 산산조각이 나는 상황이다. 여러 해에 걸쳐서 그들은 서로 관계 맺는 방식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개발하고, 매우 깊이 뿌리 박히도록 만들어왔다. 이런 관계 패턴에 변화가 일어나면, 외부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변화든 아니면 건강을 얻기 위해 도입한 변화든, 그들의 정체성 자체를 흔들어놓는다.
p. 71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 부담을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가족과 관련하여 나 자신을 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자, 내가 반응하는 방식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스탠과 존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더는 느끼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나를 짓누르던 일에서 벗어났다. 그것이 내가 우리 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p. 73
불행히도 나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당연한 귀결인 '다른 사람들도 스스로 책임지게 하라'는
부분을 놓쳐버렸다.
p. 77~78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해주면서 늘 내가 원하던 칭찬을 받았고, 내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쉽사리 이를 올바른 접근으로 받아들였고, 심지어는 옳은 일이라고 독선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을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외부적 요인에서 오는 압력 말고도 다른 것이 필요하다. 행동은 내적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야 한다. 나는 강하고 유능하며 통제력이 있는 이미지를 종종 내보였지만 속으로는 불안정했다. 그런데 바로 이 불안정함이 내가 맡은 역할을 촉진시켰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기를 바랐다.
내 자존감은 거기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어떤 때는 의식적으로, 남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으려고 내 삶의 상황을 조정했다.
p. 80
인에이블러의 파괴적인 지지의 이면에는 어떤 자백이 숨어 있다. 파트너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약한 파트너라도 있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인한 인에이블러는 나약한 의존자가 실제로 성공해서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인에이블러들은 의존자에게 실질적인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의존자의 약점을 계속 유지시킴으로써 역으로 의존자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p. 85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진실이든 거짓이든 옳은 대답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속으로는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뿌듯하게 생각하므로 가면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혹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그들은 자존감이 있으므로 그 실수를 인정한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존감은 자신이 옳았던 수많은 경우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에서 생겨난다. 거절당할까 봐 지나치게 겁을 내고 그 두려움에 굴복하는 사람은 정직하고 올곧은 삶을 이끌어갈 수 없다, 그들에게는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는 바를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없다.
인에이블러는 비난이나 분노 혹은 거절이 두려워서 자기 생각과 욕망을 비밀로 유지하는 습관을 기른다. 그렇기 때문에 대립과 폭로를 몹시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P. 88~89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배우자나 자녀들,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순수하고도 멋진 선물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마음을 터놓는 것이 늘 쌍방 간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한쪽에서 정직하고 올곧은 관계를 이어나가려 해도 기만과 조작으로 응답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확립된 상호 작용의 패턴을 바꾸려면, 누군가는 앞장서서 먼저 마음을 터놓고 진솔하게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진실을 듣는 것도 못지않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존중심과 배려심을 갖고 진실을 말한다면, 그 친절한 마음이 두 사람의 성장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P. 92
사람이 스스로 바꾸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뿐이다.
P. 111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협력자가 되어야 하는 이 '용기'는 다른 사람의 악덕과 나약함을 부추기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데' 써야 한다.
P. 114
인에이블러는 사랑의 강력한 보호막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덧씌우는데, 자신이 그들을 질식시키고 있을 가능성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 사랑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p. 117
인에이블러의 가장 큰 덕목은 용서하는 것이다. '실수는 인간의 일이고 용서는 신의 일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에이블러와 의존자가 갈등을 빚을 때,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신이 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상처를 받은 인에이블러는 이런 진부한 속담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얻고 우쭐해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은 용서하는 척하면서('척하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인에이블러들은 진실한 용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존자들에게 평생 겁을 먹을 만큼 죄의식을 듬뿍 쌓아줄 수 있다.
P. 120
인생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라는 충고를 받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높은 기준을 세우거나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인생에는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는 비현실적 기대감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나의 세대는 정숙한 여자, 다정한 아내와 어미니를 이상적인 모범으로 받아들였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아마도 다른 종류의 완벽함을 상상할 테지만, 이들도 어른의 삶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내 세대와 별다를 바가 없다. 다만 서로 다른 미로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
P. 123
인에이블러-의존자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낮은 자존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인간의 삶에 관해 현실적인 관점을 길러야 한다.
P. 128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은
종종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쳐서라도 피하려고 노력했던
'변화'에서 오곤 한다.
거부하며 싸우든 기꺼이 받아들이든, 변화는 일어난다. '지나간 옛것'을 그리워하며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현재 얻을 수 있는 것'을 환영하거나,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P. 135
당신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부분이 아닌 다른 요소에 입각한 삶을 개발하도록 이끈다면, 그 결과,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기꺼이 직시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의존자가 있든 없든 스스로 보람 있는 인생을 창조할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당신이 맺은 관계에서 어떤 변화의 결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의지가 있으면, 변화하려는 용기가 생긴다. 인간이 자신의 일을 다 하고 나면 하늘이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신뢰하면 되는 문제다.
다행히도 우리는 온 인생을 단번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에 하루를 살면 된다.
P. 138
사람들은 보통 자기 가치를 의심하면
주위 사람들과 이루는 강한 유대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P. 141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는 감정과
홀로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바탕을 둔 의존은 전혀 다르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동반자들이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두 사람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공동의 목표를 갖는다. 이렇게 결합한 두 사람은 역동적인 커플을 이룬다. 이와 대조적으로, 상호 종속자들은 서로 지지하는 척하면서 그저 각자의 요구를 키울 뿐이다.
P. 144
사랑하는 관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최선인 일을 하는 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필요에 의한 관계는 상대를 위해 우려하는 척하지만 실은 자기중심적이다.
P. 150~151
감정은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지만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신뢰할 수 없는 지침이기도 하다. 사람들이나 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에서 비롯된 감정이 부적절한 일련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진정으로 노력할 때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사람도 자신과 똑같이 느낀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주관의 투사'라고 부른다.
주관의 투사에서 다른 사람들은 거울로 작용한다. 다른 사람을 볼 때 실은 자기 자신을 보면서 타인들도 자신과 똑같은 감정과 태도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에 관해 어떤 특정한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보다는 자기 자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P. 158~159
신체적 행동 패턴이나 습관을 바꾸면 감정을 느끼는 다른 방식을 알게 되고, 그 감정에 다르게 반응할 수 있으며 이것이 감정을 느끼는 또 다른 방식을 찾아내게 만들면서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을 자기가 직접 선택하면 엄청난 통제력을 손에 넣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의 행동은 관계 역학의 일부이기 때문에 행동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바꾸면 그 사람이 맺는 관계 역시 개선될 수밖에 없다.
P. 163~164
인에이블러로서 시작해야 할 일은 조장하는 관계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자신이 맺은 관계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떠맡은 책임과 의무를 모두 재평가해야 한다.
자기 것이 아닌 책임과 의무는
적법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오롯이 자신의 것만 간직해야 한다. 이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으므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에게 할애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을 위해 너무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는 구실이 없어지면, 자신이 소홀히 해온 재능을 자유롭게 계발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결정하든, 꼭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를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한다. 가족 누구라도 당신의 계획을 포기하도록 압박을 가하게 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새로운 인생이 최우선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
작은 일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시작하고, 그런 다음에는 계속 버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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