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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산문 <평범한 결혼생활>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한 친구가 이 책의 한 구절을 읽어줬다. 그 부분에 끌려 책을 구매했는데, 구매할 때 드는 생각은 이렇게 시집처럼 얇은 책을 왜 이리 비싸게 판매하는가였고,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남의 가정을 엿본 느낌이었다. 심지어 내가 끌린 대목은 이 사람의 글이 아니라 인용문이었다...... 아놔......
물론 읽는 동안, 재미는 있었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말이다.
대체 누가 결혼생활을 '안정'의 상징처럼 묘사하는가. 결혼이란 오히려 '불안정'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p. 11
작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하지현 선생님이 한 번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사람의 작은 단점 열 가지에도 내가 그 사람을 견디고 여전히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내가 평소에 잘 의식하지 못하는 아주 커다란 장점 한 가지를 가지고 있을 거에요."
p. 125
한 여자와 한 남자에겐 두 개의 심장과 두 개의 몸이 다 따로 있다. 고로 '일심동체'는 어디까지나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다. 두 개의 심장과 두 개의 몸이 한 집에서 매일 서로를 마주하다 보면 자주 누군가는 참거나, 외면하거나, 거짓말을 한다. 어떤 사랑이든 사랑하기 때문에, 또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 어떤 종류의 불행들에 대해서는 '익숙해지도록' 스스로를 길들인다.
p. 127
그래도 이 작은 책을 쓰는 동안 얻은 한 가지 깨달음쯤은 밝히고 싶다. 나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적당히 피하면서 사는 것도 인간이 가진 지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결혼이란 뭘까, 부부란 뭘까, 행복이란 뭘까, 같은 것들을 정색하고 헤아리려고 골몰한다거나, 100퍼센트의 진심이나 진실 따위를 지금 당장 서로에게 에누리 없이 부딪쳐서 어떤 결론을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대개 실패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질문들의 종착지는 결국 '그럼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막다른 골목일 뿐인데, 그렇다면 왔던 길을 도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패배가 아님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책을 읽다 보니 '오로지 진실하려고 애쓰다니, 너무나 피시pc하고 모범적이지 않다.'라는 표현이 나왔다. '피시하다'라는 표현이 두 번쯤 나왔는데, 굳이 이렇게 표현해야 하나 싶었다. 쓰는 사람 마음이지만...
(90년대 중반쯤, 여성학에 붐이 일어나면서 한동안 유행어처럼 쓰였던 단어였다.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말 그대로는 '정치적 올바름'정도라고나 할까.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근거한 언어 사용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 의미 자체는 차별과 혐오를 덜어내서 사회의 부조리함을 줄여보고자 하는 것인데,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요즘은 오히려 PC가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과도하게 그쪽으로 집착해서 웬만한 것에도 딴지를 거는 사람들로 인해 PC충(蟲)이라는 단어까지 등장시켰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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