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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마술 상점> 2021
<마술 상점> 김신영 시집에서 추천하고 싶은 시
p. 42~43
그때가 세상은 봄이다
살아온 마디만큼 응시가 깊어지고
당신을 그리워할 때가 되면
그때가 세상은 봄이다
새로워진 것이 하나둘
붉은 얼굴을 불러들이는 봄
얼굴 가득 들어찬 주름을 털어 내
나도 봄을 불러들인다
아린 기억이 만든 사랑도 봄이 되는 저녁
잊을 수 없어 두렵던 날도 봄빛을 담는다
두근거리는 저녁 사랑 하나 품어
몰래 간직한 바람, 숲, 안개가 봄빛이다
어딜 가나 당신이 있다
봄빛 나무 잔가지에서 눈을 반짝이고
무성한 이파리 속에도 당신이 있다
하얀 눈이 내려 덮인 산하에도
첫사랑 같은 문장이 스며
나무에 묶여둔 마음이 봄이 된다
인생이 어느 가시밭길을 갈지 모르나
연탄길 같은 다정을 키워보는 것
바람 부는 마음을 안고 걸어도 봄을 안고 걷는 것
오늘 시내 방향은 봄빛 일색이다
하늘이 흐리고 마음은 더 광막하여도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있어도
당신을 그리워하는 때가 되면
그때가 세상은 봄이다
광막-광막하다: 아득하게 넓다.
p. 58~59
비상벨
쓸데없이 별일 없이 아무 일 없이
쩌렁한 비상벨이 울릴 때가 있다
멀리 두고 온 마음 바짝 따라붙어
손을 놓지 않을 때가 있다
책장 넘어가는 도서관에서
멍한 정신에 비상벨이 울리면
순간 증폭되는 비상한 소리 따라
화들짝 복도로 쫓아 나오던 기억
그때 비상하게 우리가 두고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게도 가끔 저런 비상벨이 울리지
오작동인 줄도 모르고 한참을 울다가
아무 일 아니었다고 그쳐야 하는 무안
언제 울려야 할지 비상대기 상태에서
비상하지 않은 오작동이 마음에 남는다
오작동이 일상이 되는 허랑에
정말 위험할 때는 잘 울릴 수 있을까?
문득 마음속 비상벨이 궁금해진다
어디 둘 데 없는 슬픔의 비상벨
흩날리는 눈꽃처럼 거리에 환영으로 내려오고
별 볼 일 없이 비상벨이 울리는 날이면
달빛이 모조리 창가에 모여들고
귀 먼 말소리에 귀 대고
입가 쉼표는 신발장에 올려놓고
눈먼 사람들과 창가에 오래 앉아 있다
허랑-허랑하다: 언행이나 상황 따위가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다.(허황하다: 헛되고 황당하며 미덥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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