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소설] 임솔아 <최선의 삶>

나에대한열정 2022. 9. 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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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최선의 삶>

 

 

중학교 아이들이 주인공인 소설. 그러나 그 세계의 무게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만큼 무겁고, 외롭다. 차라리 그 무게들을 대놓고 드러낼 수 있었다면, 그들은 조금 더 밝은 곳으로 갈 수 있었을까.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을까.

 

결말부분이 아쉬웠다. (나 스스로) 해결책도 내놓지 못할거면서, 그러면서도 아쉬웠다. 안타까웠다. 그게 최선이었다고, 원망조차 하지 않는 시선이, 마음이 속상했다.

 

아이들의 문제는 어른들의 그것보다 늘 어렵다. 어떤 광고의 문구처럼 그들의 세계를 방관하면 그들이 가게 되는 어른들의 세계 또한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참 청소년 범죄가 사회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을 때, 정의라는 측면보다 그 아이들의 인권을 그리고 변화를 위해 일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대학원 전공을 형법중에 형사정책으로 정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치기어린 결정이었다고밖에. 내 삶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 무엇하나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늘 질문의 대답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었다. 어른들의 문제였다. 어른들의 책임이었다. 그런데 막상 부모라는 자리에 있게 되니, 모든 책임을 전가했던 어른들의 입장을 마냥 비난만 할 수도 없었다. 오직 하나, 다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내 자식들이라도 나에 의해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른들 각자가 자기자식에게만 제대로 된 사랑을 줄 수 있으면, 조금 더 문제의 해결은 쉬워질지 모른다.

 

중학교를 다니는 딸아이의 생각이 궁금한데, 아직 책을 넘기지 못했다. 책의 표지를 보고, 너무 우울한거 아니냐며 어느정도의 반감을 드러낸 탓에 말이다. 가끔은 나보다 더 꼰대같은데, 이런 내 아이의 반응이 궁금하다. 책상에 갖다놔야겠다. 

 

 

 

 

 임솔아 <최선의 삶> 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

 

 

p. 12
무서운 것에 익숙해지면 무서움은 사라질 줄 알았다. 익숙해질수록 더 진저리쳐지는 무서움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p. 14
왜 집을 나갔느냐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받을 때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아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러면 집이 싫으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대답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밥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멀리 나가다보면 원하지 않던 곳에 다다르더라도 더 멀리 나아가야만 하는,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 곳에서 더 먼곳으로 갈수록,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더 비참한 느낌이라는 걸, 따뜻한 이불이 포근하고 좋아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p. 26
거리에서 만난 어른들은 집으로 가라고 내쫓았다. 놀이터도, 주차장도, 골목도, 오래 있을 장소가 되어주지 않았다. 어디에서든 우리는 보스였지만, 어디에서든 우리는 빈대였다.

 

 

p. 31
질문은 늘 숨이 막혔다. 어떤 질문도 우리가 궁금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를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p. 73
이제 나의 꿈은 종이접기 박사가 아니었다. 나는 단어를 떠올렸다. 병신. 하지만 최소한 병신은 되고 싶지 않다는 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p. 88
"내가 안 보기로 한 애랑 노는 건, 나도 안 보겠단 뜻인 거지."
친구와 사이가 나빠질 때마다 소영은 이 말을 강조했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소영을 선택해왔다. 각자 소영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다수의 아이가 소영을 선택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다수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선생들은 우리라는 덩어리를 싫어했지만, 그중 몇몇 선생은 소영이라는 개인을 아꼈다. 몇몇 친구는 소영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했고, 몇몇 친구는 소영을 무서워했다. 소영은 꼭 필요한 아이였다. 싸움이 났을 때 미지근하게 끝내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과의 싸움은 물론이고 어른들이나 선생과의 문제에도, 소영이 개입하면 최선의 결과를 낳았다. 주먹질은 정당방위가 되었고 이 주일의 징계는 일주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선의 결과만을 원하는 아이는 우리 중 소영뿐이었다. 우리는 다만 최악의 결과가 두려울 뿐이었다.

 

 

p. 92
싸움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소영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보호는 치열한 공격이 될 때가 많았다. 치열한 보호가 비열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p. 130
책가방에는 식칼 한 자루가 늘 있었지만,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식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나 혼자였고, 그 식칼을 무서워하는 것도 나 혼자였다.

 

 

p. 139
우리 둘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긴한 적이 없었던 가족의 사랑도 사라졌다. 학교도 사라졌다. 끔찍함이 사라졌다. 한 세계를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읍내동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가끔 혼자 중얼거렸다.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p. 174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나는 이제 읍내동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읍내동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소원도 이상한 방식으로 도래해 있었다. 언제 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쉽게 녹아 사라지지 않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고. 무겁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함박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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