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소설] 토레 렌베르그 <톨락의 아내>

나에대한열정 2022. 9. 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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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 렌베르그 <톨락의 아내> 

 

 

 

 

 

잉에보르그의 남자로 불리던 존재, 톨락.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톨락이다. 소설의 제목으로 봤을 때 <톨락의 아내>라고 되어 있어서 아내가 주인공인듯하지만, 표지에 써있는 Tollak til Ingeborg 를 보면 till은 노르웨이어로 소속을 나타내서 "잉에보르그의 톨락"인 것을 볼 수 있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 원제를 보기 이전에는 작가정신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임마뉘엘 베르네임의 <그의 여자>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분명 그 여자였는데, 상대를 통해서 드러나는 그녀의 성향이나 정체성들을 더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나 하는 느낌에서 말이다.)

 

첫문장: 입술 사이로 피가 흘렀다.

악성종양으로 인해서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톨락은 자신이 살면서 감추어왔던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아들과 딸에게 집에 오라고 한다. 아내인 잉에보르그가 실종되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데려와서 키웠던 오도(오토)가 누구인지.

 

소설은 영화의 시퀀스처럼 과거와 현재가 섞이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현재가 보여지고, 그에 연관된 과거를 다시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일이든 가족이든, 늘 자기방식대로 살아온 폴락. 사랑도 아이를 키우는 방식도 마음대로 해놓고, 자기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남자.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으면서 끝까지 자신의 입장에서 서는 남자. 진실이 다 밝혀졌을 때 남겨진 사람들이 받을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 남자. '이제 와 진실을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에만 멈추고, 결국 자신의 뜻을 펼치는 잔인함.

사랑이라는 허울로 가리워진 폭력, 본인은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가부장적인 모습,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딸을 향하여 자신을 공격한다고 비난하는 남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도 그건 자신이 아닌 낯선 남자가 자신안에 있다고 변명하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도(오토)를 향해서는 쏟아지는 아버지의 정. 

 

건조하게 툭툭 떨어지는 문장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보고 있는 나는 계속 가라앉는 느낌이다. 스폰지에 하반신을 묻고, 그 스폰지에 계속 물이 스며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기분 같은 거.

 

★ 처음 알게 된 작가이자 작품. 완전 내 스타일~~~

 

 

 토레 렌베르그 <톨락의 아내>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

 

 

p. 22
나는 단 한번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시간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무서운 속도로 바꾸려 했을 뿐 아니라, 과거에 속한 것을 존중하지도 않았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을.

나는 이미 오래전에 새로운 시간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나는 이 골짜기 마을에서 잉에보르그, 목재소, 들판과 산, 나의 두 손, 도끼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나의 그런 삶은 이제 끝이 났다. 지금 내 곁에는 잉에보르그도 없다. 내 삶의 작은 불빛이 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나. 변하지 않은 나.
듣고 있나?

 

 

p. 48~49
그렇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면 땅이 흔들릴 만큼 큰일이 벌어진다. 나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머니는 가끔 두 손을 맞잡고 끝없이 이야기를 흘렸다. 어머니의 이야기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 어머니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잉에보르그를 처음 만나던 날, 별안간 어머니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번도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건만, 그날만큼은 그 이야기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때는 10월이었고, 들판은 황토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의 삶에 잉에보르그가 아닌 다른 여인은 들어서지 못했다.

 

 

p. 55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기 마련이다.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과거에 행했던 모든 일과 과거에 보았던 모든 것과 과거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 차예 눈앞에 스친다. 하나도 빠짐없이. 좋든 싫든. 바로 그때. 우리는 스스로와 화해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이제 나를 쫓던 검은 사냥개가 눈앞에 나타나도 두렵지 않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p. 59
나는 일상의 자잘한 모든 일을 기억하는 남자라고는 할 수 없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나는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내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며,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그런 사람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나는 모든 일에 신경을 쓰고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 삶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지난 일을 머릿속에 담아두지도 않고 기억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날 부엌에서 나눈 대화는 지금도 선명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녀의 말투와 억양, 우리 주변의 갖가지 색깔마저 모두 기억한다. 그녀의 등 뒤로 보이는 창밖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p. 79
잉에보르그는 잠이 무척 많은 여자였다. 함께 살기 시작한 후로 나는 그녀의 잠버릇 때문에 자주 짜증을 냈다. 아침이 되면 나는 벌떡 일어났지만 그녀는 침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나는 어둠이 내리자마자 바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내가 함께 살고자 했던 여인은 늦도록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를 향한 짜증도 사그라들었고, 오히려 이런 불균형적인 일상이 점점 좋아졌다. 동틀 무렵의 희미한 햇살 아래서 잉에보르그가 일어나길 기다리는 시간, 홀로 먼저 잠자리에 들어 몇 시간 뒤 살그머니 내 곁에 몸을 붙여 올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좋아졌던 것이다. 

 

 

p. 83~84
어둠이 잉에보르그를 짓누르던 시간, 아픈 시간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았으나 일일이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비웠고, 언젠가는 그 아픈 시간이 끝나리라 믿으며 기다리기만 했다. 
거의 1년이 흘렀다. 그녀는 다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헐렁한 옷차람에서도 벗어났다. 저녁 늦게까지 깨어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를 떨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구석진 자리 대신 다시 열린 공간 속에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힘겹게 그 시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어둡던 시간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단시 어딘가에 숨어 동면을 취하고 있었을 뿐.

 

 

p. 103
힐레비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서로를 향해 굴러가는 두 개의 모난 돌처럼 살아왔다. 매우 오랫동안, 둘 중 어느 하나도 싸움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싸움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p. 107~108
당신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시나요?
뭐라고?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아시냐고요. 나는 어머니가 어떻게 아버지와 평생을 함께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내가 아는 어머니는 이 마을에서 가장 이성적인 사람인데도......아버지는 아시나요? 우리의 삶이 어땠는지? 내가 어비지 때문에 얼마나 자주 정신과 치료를 받으려 다녀야 했는지, 아버지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냐고요. 아버지 때문에 제가 얼마나 많은 인간관계를 포기해야만 했는지 알아요? 아버지의 딸로 살면서 제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아세요? 아버지를 만나려고 집으로 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아요. 그것도 모르시죠? 아버지가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알아요? 당신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 일인지 아세요? 어머니가 실종되었을 때 우리의 삶도 함께 무너졌다는 건 알고 계시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 아시나요?

 

 

p. 115
내가 그녀의 삶을 앗아 갔다.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다. 내동댕이치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나는 자주 - 매일, 매분, 매초- 그날 내 안에는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잉에보르그를 때려죽인 남자.
곧 아이들이 오면 나는 지금껏 가슴속에 숨겨왔던 이 지옥 같은 비명을 마음껏 내지를 것이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남자일 뿐.
오도.

 

 

p. 158
왜 모두들 내게서 세상을 빼앗아 가려는 걸까?

 

 

 

 

(작가정신 출판사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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