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소설] 나이트비치Nightbitch (레이철 요더/황금가지 출판사)

나에대한열정 2024. 4. 20. 23:48
반응형

레이철 요더 《나이트 비치》


마리엘 헬러 감독, 에이미 아담스 주연으로 올 가을에 개봉 예정인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훌루Hulu 오리지널)
평생 창작을 업으로 삼았던 저자 레이철 요더가 아이를 낳은 후 이삼 년간 전혀 글을 쓰지 못했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집필하기 시작한 이 소설은 수많은 여성 창작자의 공감대를 불어일으키며 화제를 낳은 작품이기도 하다.

페미니즘, 또는 그런 소재를 다룬 작품은 어쩌면 읽기전에  보기전에 이미 편견을 가지고 대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을 가지게 된다. 왜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생길 수 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이 책은, 자신만의 꿈이 있었던, 그러나 결혼과 육아라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잃어버렸던, 또는 잃어버린 "엄마,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매일같이 독박육아에 시달리고, 경제을 담당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손하나까딱하지 않고,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엄마에게 있는거 같고, 해야될 일은 너무나 많지만 그건 또 당연하면서도 티하나 나지 않고, 오히려 조금만 소홀해져도 책임은 홀로 다 맡아야 하는, 그런 엄마라는 위치말이다.

그런 속에서의 나름의 분노가 나이트비치라는, 한밤중에 개로 변하는(계속은 아니지만), 황당하지만 이해가 될듯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런 변화와 겸험에 대한 놀라움이 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면서 여자의 생각과 행동은 변화를 갖게 되는데......

책을 읽으면서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계속 생각났다.

불륜이라는 오해를 받을지라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여자의 마음도,
오래전 아이에게 분유20ml를 먹이겠다고 한시간마다 깼던 그 시절의 "나"와도 만나던 시간.

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지 이해해 줄, 함께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애초부터 그런 공간과 시간은 거론조차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위로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글로나마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던 작가가 부러웠던 시간이었다.



첫문장: 스스로 나이트비치라고 여겼을 때는 그저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진 것에 불과했다. 여자는 자신을 기꺼이 놀릴 만큼 시원스러운 사람이었다. 분명 틀에 박히지도 아주 예민하지도 않았고, 작정하지 않고 던진 비아냥을 가볍ㅂ게 웃어넘기지 못한 만큼 별나게 고지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새로운 별칭을 붙이고 나서 며칠 동안, 여자는 자기 목덜미에 수북이 돋아난 까맣고 거친 털을 발견했다. 잰장, 이게 뭐야.


p. 17~18
여자라면 누구나 일찍이 소녀 시절에 불꽃을 지핀다. 그리고 그 불꽃을 키우기도 끄기도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불꽃을 보호한다. 그 불꽃이 산더미 같은 불길로 번져 맹위를 떨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그건 얌전한 숙녀가 되는 길이 아니니까. 그래서 불꽃을 꼭꼭 숨긴다. 그저 조용히 타오르도록 놔둔다. 다른 소녀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거기서 깜빡이는 그들의 불꽃을 목격하고 음모를 꾸미듯 고개를 까닥일 뿐, 거의 참기 힘든 열기며 점점 커지는 불길에 대해서는 절대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불꽃을 끄는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홀로 차가운 곳에 버려진 채 꼼짝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산란을 멈추는 닭신세가 되고, 현실적인 운명이 갇히고,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합의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수긍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다가 '그'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결국 나만의 방식을 제외한 다른 모든 방식으로 생각하고 만다.


p. 21
여자는 한밤중에 치밀어올랐던 분노와 응어리, 매정함에 자신조차 깜짝 놀랐다. 그래서 전날 밤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던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내심 끔찍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나이트비치는 늘 그 자리에, 심지어 그리 깊지 않은 내면에 있었다는 것을.


p. 32
워킹맘이 아닌 엄마가 어딨겠어? 그럼 직장까지 다니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일하는 워킹맘? 워킹대디라는 말이 있나 생각해 봐.
하! 여자는 자기가 얼마나 씁쓸한 기분인지도 모른 채 거침없이 탄식했다.


p. 35
여자가 훌륭하다는 증거는 이렇다. 아들이 태어난 날부터 매일 밤 깨었다가 또 깨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신통방통한 능력. 아쉽게도 남편은 수명 부족을 잘 이겨 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자는 놀랍도록 잘 일어났다. 평생 늦잠과는 담쌓은 사람처럼, 한밤중에 매시간 깨다가 새벽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게 유전적으로 입력된 것처럼. 물론 이 삶에 지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절대 고단해하지 않았다. 몸을 혹사해서 한계에 다다르고 녹초가 되어 몹시 억울하고 미치기 일보직전이었어도, 매일 아침 벌떡 일어나 하루 종일 똑바로 서 있었다. 그야말로 예전처럼 잠을 안 자도 되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능력의 소유자인 듯이 다 이겨 냈다.


p. 51
여자의 문제는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부정적 생각" 및 기타 등등. 그 생각들을 멈추려 애쎴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애쓴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남편이 돈을 더 버는 게 여자 잘못이었나? 남편이 일을 관두는 것보다 여자가 일을 관두는 게 더 나은 일이었나? 남편이 항상 집을 비우며 일주일 내내 아내를 사실상의 싱글맘으로 만든 것도 과연 여자 잘못일까?
...... 오후 내내 고독함과 고요함을 즐기는 시간으로 돌아가길 갈망하는 것도?


p. 52~53
젊은 여성이 그저 일류 교육을 받으면 모성이라는 역사적 제약애서 벗어날 수 있고, 단순히 경력을 쌓기만 하면 아이를 낳은 후에도 쉽게 직장에 복귀할 수 있으며 이전 세댁 했던 고된 노동을 피랗 수 있다는 대중적인 사회적 통념에 빠져든 것도 여자 잘못이었을까?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한 사람조차 생물학에 맞선 비뚤어진 야망, 본능에 맞선 출세주의, 현대의 엄마가 스스로 행복해지려면 덜 동물적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자, 지금 우리는 진화했고 문명화되어 있잖아. 대체 내 문재가 뭐야? 정신 차려. 정말 창피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여자를 나이트비치라고 부르는 건 정말 공평하지 않았다. 성별을 강조하는 그런 비방은 여자가 자기 몸으로 아기를 만들었고, 몇 달 동안 증식 세포를 키우며 몸매를 망가뜨렸고, 나날이 뚱뚱해졌고, 썩 중요하지는 않지만 잚은 여자다운 성적 매력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체형이나 마른 몸매나 이성애적 남성의 관심 끌기 따위에 신경쓸 생각도, 관심도 없다.


p. 62
......심지어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바지에 오줌을 싸고 서로 부딪치다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울고 웃고 뛰어다니는 동안 그 중간쯤에서 서로 번갈아 가며 멍하니 바라만 보는 엄마들......엄마들의 그런 표정을 보면 딱 감이 온다. 피로와 지루함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이 담긴 표정임을 여자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가 잃어버린 것,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을 응시하는 듯이 보였다. 그게 뭐였을까......?


p. 84
이제 여자는 그녀를 필요로 하는 존재, 껴안고 먹이고 씻기고 달래고 애지중지해야 할 또 다른 존재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은 오로지 고요함을 원했고, 무엇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길 바랐다.


p. 88
동전과 피와 죽음의 냄새는 여자를 헤아릴 수 없는 배고픔에 몰아넣었다.



p. 137~138
결국 이 모든 건 여자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자의 한정된 자원,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 영감을 고려해 볼 때 무엇을 위해 싸울 가치가 있을까요? 예술일까요? 거대한 상황 속에서 에술은 너무나 무의미해 보이고 심지어 이기적이기까지 합니다. 세상에 자기 관점을 밀어붙이는 것, 누가 진정 원할까요? 특히 아이가 당장 엄마를 필요로 할 때는요?
제겐 엄마 노릇만큼이나 예술도 필수적으로 보인다는 것 말고는 다른 해답이 없습니다. 나 자신으로 살려면 에술은 필수적이니까요. 예술이 없다면 전 아마 사람이 되는 걸 그만둬야 할 겁니다. 그게 충분한 이유가 될까요? 예술이 제게 중요하다는 게?


p. 139
여자는 개가 된다는 생각이 좋았다. 짖거나 으으렁거릴 수 있고, 그것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으니까. 원한다면 자유롭게 달릴 수도 있다. 그녀는 몸이 될 수도 있고, 본능과 충동이 될 수 있다. 배고픔과 분노, 갈증과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가슴이 두근대는 순수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p. 167
요즘 나이트비치의 비밀은 순전히 그녀의 것, 엄마와 아내와 중년 여성 이외의 것이었다. 이제 그 비밀은 한때 푹 빠져 있던 예술만큼이나 소중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그녀의 예술에도 뭔가 비밀스러운 것이 있었다. 아이디어에 대한 꿈, 작업을 시작할 때 마음속에 묵묵히 품었던 흥분, 꿈꾸던 프로젝트가 성장할 수 있는 높이, 혼자 작업하는 시간, 생각과 상상, 자신과의 대화 등. 나이트비치의 작품에는 삶에 관한 아름답고, 기분 좋게 비밀스럽고, 친근하고, 도취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p. 210~211
그러니 어떤 면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수많은 밤을 빚지고 있는 게 아닐까? 아내가 여러 해 독박 육아를 하며 지새운 수많운 밤에 경의를 표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행복하고 감사한 밤샘 육아를 떠맡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래야 공평하다. 하지만 그들의 가정은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나이트비치는 발끈하거나 소란을 피우거나 어떤 언쟁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 봐야 남는 게 없었으니까.

이 모든 상황은 나이트비치를 딱 죽고 싶게 할 만큼 절망적이었다.

딱 한 시간만, 뭐든지 하고 싶었다.


p. 242
타인을 배려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고, 실패자처럼 느껴져서 화가 났다. 사실 자신을 실패자로 여긴다는 건 실제로 실패자가 되는 첫걸음 아니던가?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생산적이지 않았다.


p. 255~256
얼마나 많은 세대의 여자들이 자기네의 위대함을 뒤로한 채 시간을 허비하며 결국 그게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방치한 걸까? 남자들이 자기네 시간을 다룰 줄도 모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시간을 다 소모해 버렸을까? 게다가 그런 행위들을 거룩하거나 이타적이라고 표현하는 건 얼마나 비열한 속임수인가. 모든 꿈을 포기한 여성들을 찬양하는 건 또 얼마나 사악한 짓인가.



p. 206~297
젠, 학교에서 어떤 공부 했어요?

그런 질문 참 오랜만이군요.

엄마라는 잔인한 시간은 재미있고 활력이 넘치고 강한 힘이 있고 뻔뻔함도 있지만, 그 핵심에는 매우 사적이고 슬픈 것이 있다. 엄마가 마음속 어딘가 차갑고 어두운 곳에 깊숙이 집어넣은 꿈들, 그 안으로 들어가 그 꿈들을 확인하고, 불을 켜고, 시트를 확 벗겨내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더는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꿀 일이 없으니까. 입으로 동물을 죽이고 싶어 미친 듯이 배회하는 년이 자기 안에 있으니까.



p.322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반응형
B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