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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욕-바른욕망(아사이 료/리드비 출판사)

나에대한열정 2024. 4. 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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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 《정욕》_바른 욕망


이 책은,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갖게 되는 생각이, 책을 받고 책표지의 한자를 보고나서야 당황스러웠던 것처럼, 책을 읽고나서는 또한번의 비슷한 마음을 느끼게 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관점이 맞는 것인가. 혹여 나의 시선들로 상처받았던 사람들은 없었을 것인가.

내가 상상하거나 한정지을 수 없는 세계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세계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인데 그곳은 없어야 되는 것처럼,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잘 살아가는게 무엇인지, 다른 이들과 공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잣대의 기준이 무엇이며, 진정 그게 바른 답인지. 혹여 그 잣대들 너머에 방치된 이들은 없는지, 그 잣대의 기준이 사회의 보편적 시각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휘둘러져 상처를 내지는 않았는지, 많은 생각들속에 머물게 한 책이었다.

기존의 가치속에 머무는 것이, 변해가는 세계속에 맞추는것보다 단지 편하기 때문에, 때로는 다른이들의 시선속에서 튀는 것이 싫어서, 각가 다른 이유들로 우리는 평범함이라는 것을 가장하고는 있지 않은지.
한번은 진정한 자신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p. 8~9
다양성, 이 단어 속에는 축복과 비슷한 이미지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정하자.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더라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자. 나답다는 데 당당해지자. 타고난 속성을 다른 이가 판단하는 건 틀렸다. 가슴이 상쾌해질 정도로 축복이 반짝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결국, 소수자 가운데서도 주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자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자신과 다른 것'에만 해당하는 말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나머지 이해하기 힘든, 직시할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러워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것에는 단단히 뚜껑을 덮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들이죠.


p. 19
가치관을 재는 눈금이 항상 흔들리는 시대이므로 법 아래의 평등만은 지켜야 한다고 히로키는 생각했다.

매일 아침, 여러 종류의 식사를 준비하는 번거로움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받아들여 주는 아내에게 히로키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다만 동시에 그 번거로움을 받아들일 여유로운 환경을 만드는 게 바로 자신의 급여라는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품고 있다.
생활을 지켜 주는 아내에 대한 감사와 생활비를 버는 자신의 수고, 각각 다른 방에 넣어 두어야 하는 감정인데 때로 폐유처럼 변한 그 감정이 스르륵 서로 섞이고 만다.


p. 42
식욕은, 이렇게 이따금, 알 수 없게 된다. 자신을 배신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정당하게 존재하고 늘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수면욕과 관련된 직장을, 이직처로 선택한 것이다. 나쓰키는 여전히 자기에게는 딱 맞지 않는 실내 온도 속에서 샌드위치를 입에 쑤셔 넣었다. 잘 생각해 보면 온도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애당초 나는 이 세상이 설정한 커다란 길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p. 328~329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욕구는 세상의 긍정을 받는다. 온 세상이 성욕을 품은 대상과의 연애를 장려하고 성욕을 품은 대상과의 결혼, 그리고 생식은 우주의 축복은 받는다. 그런 풍경 속에서 살았다면 나는 어떤 인격으로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성욕은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주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품은 욕망은 '거기에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되길 바란다.
뭘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이 별에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싶다. 모든 걸 가지지 못하고 살더라도 이 별이라면 살 수 있다고 기대하고 싶다. 이 세상이 그런 곳이 되면, 예를 들어 인생 도중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더라도, 살아간다는 자체에 절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엿한, 평범한, 일반적, 상식적, 자신이 그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째서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사는 길을 좁히려고 할까. 다수의 인간 쪽에 있다는 자체가 그 사람에게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정체성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누구나 어제 본 건너편에서 눈뜰 가능성이 있다. 어엿한 쪽에 있던 어제의 자신이 금지한 항목에 오늘의 내가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이 살기 쉬운 세상이란 곧, 내일의 내가 살기 쉬운 세상이기도 한데.



p. 379
어엿한 사람으로 있으려면 다수파로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어엿한 인간이 아니라며 관찰되고 배제되니까. 어제까지 나와 같았던 누군가에게.
도미노가 쓰러진다.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옳고 정답이라고 믿는 유일한 근거가 '다수파에 속해 있다'라는 사실뿐이라는 모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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