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살아간다는 것, 위화 <인생>

나에대한열정 2021. 3. 1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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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인생>

 

이 책은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活着)>의 개정판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p. 8~9
이 작품의 원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다. 그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 이 작품은 개인과 운명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과 그의 운명은 서로 상대방을 포기할 방법이 없고, 서로 원망할 이유도 없다. 그들은 살아가는 동안은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함께 가고, 죽을 때는 빗물과 진흙 속으로 함께 녹아든다.

나는 <인생>이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야기는 촌에 가서 민요를 수집하는 '나'라는 인물이, '푸구이'라는 노인을 만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진행된다. 

 

푸구이 노인의 쉬씨 집안은 마을의 유지였다. 할아버지 때에는 200묘가 되는 땅이 있었는데, 그것을 푸구이 아버지가 절반을 날리고, 지금은 100묘를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구제불능이었던 푸구이는 본인이 원해서 결혼한 자전(미곡상 천씨의 딸)과 딸 펑샤(4살) 그리고 뱃속에 아들 유칭(6개월)이 있음에도, 성안으로 가서 여자와 도박에 빠져 한 달에 보름은 집에 오지를 않았다. 심지어 같이 놀던 여자의 등에 업혀 장인어른의 가게 앞에서 버젓이 인사를 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도박은 대부분이 짜고 치는 것이라, 돈을 빌려주는 도박장에서는 푸구이가 가진 100묘를 계산에 넣고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짜고 치는 판에는 룽얼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결국 푸구이의 모든 돈이 룽얼에게로 넘어간다. 모든 것을 잃고 집에 온 푸구이는 식구들에게 사실대로 얘기를 하지만,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다. 두들겨 패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소리 지르다 혼절하셨고, 어머니는 그저 울고, 아내 자전은 다시 도박을 안 하면 된다고만 한다.

 

기력을 되찾은 아버지는 아들인 푸구이에게 돈을 갚게 하고, 몇대에 걸쳐 살던 집에서 나와 초가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그 집과 땅은 모두 룽얼이 사들여 주인이 되고.

얼마 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자전은 아직 아들을 낳지 않은 상태로 장인어른이 데리고 가버린다. 

어머니와 딸 펑샤를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푸구이는 룽얼을 찾아가 땅 다섯묘만 빌려달라고 한다. 한 번도 일을 안 해본 푸구이는 처음에는 룽얼에게 줘야 되는 소작료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 그러다 아들 유칭이 태어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자전은 유칭을 데리고 푸구이에게 돌아온다. 아이를 업고 십리도 넘는 길을 걸어서 말이다. 다시 만난 그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서 잘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렇게 평탄하게 가지 않는다. 1년쯤 지났을 때 어머니가 병이 나시게 된다. 그래서 성안에 의원을 모시러가는 길에, 어느 집 앞에 있는 아이 대신 문을 두드려주다가 그 안에서 나온 하인이 푸구이의 행색을 보고 밀치는 바람에 하인과 푸구이는 옥신각신 싸우게 된다. 한바탕 치고받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치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국민당 병사들이 한 무리가 있고, 마차가 끄는 대포는 열 개도 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리를 지른 것은 그 부대의 장교였는데, 무작정 그들에게 대포나 끌라고 한다. 그렇게 어이없이 군으로 끌려간다. 가족들에게는 어떠한 연락도 취할 길도 없이.

 

해방군과 국민당과의 전투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푸구이는 2년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딸 펑샤는 일 년 전에 열이 크게 나면서 갑자기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푸구이가 집에 돌아온 그 무렵, 토지개혁이 시작되었다. 공산당은 부자들이 가지고 있던 토지들을 몰수해 이전의 소작인들에게 나눠주었다. 룽얼은 푸구이의 집과 땅을 가진 지 채 4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대로 빼앗기게 되자 난동을 부리게 된다. 인민정부는 룽얼을 악덕 지주로 몰아 감옥에 가두게 되고, 급기야 총살형을 받게 되는데, 총살당하기 전에 푸구이를 본 룽얼은 "푸구이, 너 대신 내가 죽는구나."라고 소리를 지른다. 정말, 아버지와 푸구이가 집안을 말아먹지 않았다면 그날 사형을 당할 사람은 바로 푸구이였던 것이다. 그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던 전쟁에서도 살아남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자기 대신 룽얼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자, 푸구이는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딸 펑샤가 말을 듣거나 할 수만 있었어도 벌써 시집을 보냈을지도 모르는데, 상황이 그렇다 보니 푸구이와 자전은 고민을 하게 된다. 펑샤를 다른 집으로 보내고 돈을 아껴서 그걸로 유칭을 학교에 보내자고 말이다. 그렇게 펑샤는 다른 집으로 보내지지만 몇 개월도 안돼서 되돌아온 펑샤를 차마 푸구이는 다시 데려다주지 못한다. 

 

1958년 인민공사가 만들어지고, 모든 땅이 인민공사의 명의로 재분배되어졌다. 집 앞의 손바닥만 한 자유 경작지만 제외하고. 촌장의 명칭은 대장으로 바뀌고, 새벽마다 대장이 마을 입구에서 휘파람을 불면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식솔들이 나와 그날의 일을 배정받고 그 일을 하러 흩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강철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마을에 있는 솥까지 수거해간다. 그리고 마을에 식당이 생기고, 아침마다 식당으로 배급을 타러 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얼마 못가서 다시 각자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으로 바뀌지만, 그때는 정작 쌀이 없어서 밥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들이 된다.

 

대장이 풍수전문가를 데리고 마을의 집집마다 다닌다. 바로 강철을 녹일 집을 고르는 것인데, 기운이 좋은 땅을 찾아, 그 집을 허물고 거기서 강철 녹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때에도, 풍수 전문가가 자전의 아버지와 아는 사이라 푸구이의 집은 패스가 된다. 자전이 풍수전문가를 알지 못했다면, 자신의 집이 헐리고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푸구이와 자전은 당시 집이 헐렸던 사람에게 재앙을 밀어낸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무사히 또 하나가 지나가고.

 

유칭이 다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아이를 낳다가 피를 너무 흘려서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되자, 고학년 아이들을 집합시켜 병원에 데리고 간다. 혈액형이 맞는 사람이 유일하게 유칭이고.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피를 뽑던 의사는 피를 너무 뽑아 유칭의 생명을 앗아버린다... 이렇게 푸구이의 인생에는 하나가 무사히 지나가면 또 다른 하나가 찾아오는데......

 

p. 165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다 믿을 수는 없게 된 거지. 믿지 않는 것이기도 했고, 감히 믿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나날들을 어떻게 살아갈지 누구도 자실할 수 없었거든.

 

위화의 소설들은 손에 잡으면 눈이 시려와도 읽어야 되는 매력이 있다.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좋은 문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내 스타일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번 쥐어박고 싶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그런데 결코 쥐어박을 손이 올라갈 수 없게 만든다. 안쓰럽고 헛헛하게 만든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살아가는 것...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지 어떤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글을 곱씹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 아둥바둥거리는 듯한 내 삶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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