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101

잊지 말자

"저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는 없네"라는 시각으로 보면 삶은 쉽게 초라해지고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그래서 비교는 오로지 나 자신과만 해야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낫기를, 또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거죠. 최태성 중에서 고등학교 때 이런 역사 선생님을 만났다면, 난 분명히 사학과를 부전공으로 정외과를 갔을 듯하다. 우리 때는 학력고사 국사25점만 맞으면, 그게 전부인. 암기 과목의 대표 주자가 국사였는데, 그래서 국사 25점 맞으면 역사를 다 안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지고 자란듯하다. 부끄러뭄을 부끄러운지 모르고 자란 세대.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집의 거실과 부엌 사이에 보드판이 세 개 있다. 일정이 써있기도 하고, 필요한 준비물이 써있기도..

끄적끄적 2020.10.17

배려

블로그 대문에 있는 이 사진은 내가 설거지를 할 때 보이는 곳이다. 아침 공기가 차가워서 뜨거운 물로 그릇들을 씻다가 "순간 순간" 저 식물들에게도 따듯한 물을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좋아하지 않을까? 좋아하긴...시들시들해지겠지. 배려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 하지 않는 것. 상대의 입장에서 하는 것.너 생각해서 한 거라고 말하지 말자. 공자님이 제대로 한 말씀 하시지 않았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조금만 돌려서 생각해보면, 내가 누군가로부터 받고 싶지 않은 행동은 남에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너 잘되라고 한거야"라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나는 괜찮은지 생각해보자...

끄적끄적 2020.10.16

가을에는

가을에는 ----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뭉게구름도 아니다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우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가을에는,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해마다 가을 언저리에 있을 때면 이 시가 생각이 난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

끄적끄적 2020.10.15

그럴 때가 있었다

8~9년 정도 전이었나. 남자 1호의 일 때문에 잠시 어느 지방에 머물렀는데, 그때 처음으로 5일장이라는 곳에 가봤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그런 5일장을 말이다. 막 봄이 다가서는 계절이라, 널린 게 봄나물이고, 꽃이었다. 시끌벅적한 트로트하며, 할머니들의 연이은 나물들하며...와~~~ 이런 걸 직접 보는구나 내가...감탄 아닌 감탄을 하며 시장 초입에 들어서는데... 정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쑥, 냉이, 달래 뭐 그런 것들을 바구니마다 담아 놓고 팔고 계셨다. 옆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물들을 꺼내신 건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들이 보였고...'내가 저거 모두 사면, 할머니 들어가실 수 있나?'어차피 먹을 건데...이때밖에 봄나물 향이 나지 않는데...냉동 시킬까. 뭐 이런 생..

끄적끄적 2020.10.10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최근에 손자병법을 다시 봤다.안보였던 것들을, 어쩌면 피상적인 글자로만 인식되던 것들을 이번에는 마음이 받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잘못 알려진.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심지어 에서는 백 번 이기는 것이 훌륭한 전략이 아니라고 했다. 싸운다는 것은 적은 물론 자신도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자는 온전한 승리(전승)는 싸우지 않고 적의 것을 그대로 얻는 것이라 했다.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길수도 없겠지만, 백 번 이긴다고 치자. 과연 원래 가지고 있던 인간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가까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백 번을 이긴들...그 사이에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애정이라는 거 자체가 잔존할 수 있을까. 아마 어감이..

끄적끄적 2020.10.09

고마워. 단역으로 와줘서.

삶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많은 것들이 쉬워질 줄 알았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지 않냐고 가벼이 여기다가 혼줄이 났을 수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람과의 관계이다. 에리히 프롬의 이라는 책에 보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절반의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으니 고쳐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나에게는 그저 이론일 뿐이었다. 그래? 당연히 그래봐야지. 당연한 걸 왜 쓰고 그러지...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관계를 풀기 위해 다가간다는게 얼마나 주저되고 힘겨운 일인지 제대로 느낀 적이 있다. 그래도 한번, 실천은 해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시도해봤지만, 상대가 나와 같은 뜻이 아니라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메세지만 전달받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이유와 ..

끄적끄적 2020.10.07

인생의 모든 순간은 첫경험이다

어느 순간을 맞이하고 있든...모든 순간은 내 인생의 첫 순간이고, 첫 경험이다. 영화 처럼 같은 날을 반복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럼 조금 서툴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조금은 내 자신에게 너그러워 질 수 있는거 아닌가. 누구나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는 넘어져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넘어지는 아이조차 웃으면서 넘어지고...놀이인냥 다시 일어나고, 넘어지면서 배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그런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넘어지는 걸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의 인생에 실패라는 시선을 두게 된다. 어찌보면 살아가는 모든 게 첫걸음과 다르지 않을텐데 말이다. 난 오늘도 다시 오늘의 걸음마를 시작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삶이 뭐 별난 것인가. 이렇게 쌓이면 되는 ..

끄적끄적 2020.10.06

생각이 넘치는 날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 조금의 간섭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집은 방목형이었다. 일종의 테두리는 있지만. 그것조차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펜스 같은거. 아무도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규정짓지 않았음에도. 철저히 가부장적인 집. 그러나 그 가부장을 휘두르는 남자들이 내게는 든든한 우상이었다. 마치 나를 장손인듯 대했으니까. 실존하는 그들의 씨종자(그들의 표현대로)인 내동생이 있었음에도. 내가 두 남자, 할아버지와 아빠로부터 들은 말은 딱 두 가지이다. 그게 전부다. 그 이상의 무엇도 없었다.그래서 난 상의나 조언을 구하는게 아니라, 늘 나의 뜻을 통보했다. 그럼 그걸로 끝이었다.내 모든 결정을 어떤식으로든 존중해주셨으니까.물론 너무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으..

끄적끄적 2020.10.05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설정해 놓은 한계속에서 삶이 질식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빗장을 조금만 비스듬히 열어 놓아도 이리 숨통이 트이는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매사에 거쿨진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주체하지 못하는 슬픔이 방울방울 온몸으로 스며들어 눈밑으로 터질 것 같다. 가끔은 댐의 수문을 열어 수위를 조절하듯...내게도 그런 게 필요하다.아니,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지난 음력 3일의 초승달. 정말 막~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순간...잠시 보였다 사그라들었다. 너무 이쁘다.

끄적끄적 2020.10.03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숨이 찰 때까지, 종아리에 쥐가 나기 직전까지 수영을 하거나...습식사우나에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때까지 버텨 보거나...도로를 따라, 길거리를 광합성하며 열심히 걷거나...소설책을 쌓아놓고, 노안이 오는구나 느껴질 때까지 읽거나...이어폰을 끼고서 볼륨을 최대한 올리고 세상을 단절시키거나...에스프레소를 연달아 몇잔씩, 심잠이 터질 것 같을 떄까지 마시거나...두피마사지 받으러가서 넋놓고 앉아있거나...종교도 없으면서, 요가매트 깔아놓고 108배를 하거나...야구보면서 선수들 등장할때마다 응원가를 크게 부르거나... 그런데 요즘에는 무엇하나 시원하게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더 찾아야 되는거야... ※ 재작년에 들린 오스트리아 짤츠 캄머굿...아무렇게나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 본 ..

끄적끄적 2020.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