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101

마음신호등이 무엇인가.

며칠 전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알림장에 "마음 신호등을 생활에서 실천해요."라는 표현이 있었다. 아이가 하교하기 전에 어플로 먼저 받은 것이었고, 준비물도 아니었기에 이게 무슨 말인지 물어본다는 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와 있었던 상황을 말해주었다. 이야기인즉, A라는 친구가 B라는 친구에게 나쁜 말을 썼다는 것, 그래서 B가 선생님한테 이르러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아이는 "A한테 나쁜 말 쓰지 말라고 얘기는 해봤어?"라고 했더니, B가 "네가 선생님이야?"라고 하면서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는 것. 나: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아들: "어이는 없었는데, 풍선놀이하러 밖으로 나가기 전이어서, 말을 못했어. 선생님이 시끄럽게 하면 밖으로 안나간다고 ..

끄적끄적 2021.03.26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 시작해본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지워지는 '만큼, 또는 그 이상' 채워지는 거 같다. 그중에 우선순위에 있는 세 가지는 1. 60초반에 유화로 개인전 해보기 2. 외국에서 대금으로 버스킹 해보기 3. 독일어 제대로하고, 포르투갈어도 배워서 독일어 원서 읽어보기이다. 그런데, 항상 먼저 지워지는 것들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나름 용이한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또 유혹한다. 우선순위가 무색해지게 말이다. 작년부터 그림을 배우고 싶었는데,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에 모든 계획이 방향을 잃었었다. 또 이렇게 멈춰지나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았다. 독서모임 멤버 중 한 명이 입시미술학원 선생님인데, 독서모임 하는 날, 조금 더 일찍 만나서 재능기부를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수채화로 시..

끄적끄적 2021.03.24

뭐든지 목적에 맞는 자리가 있는 법이다.

고등학교 때 선릉역과 진선여고 사이에 유명한 학원이 한 곳 있었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학원이었는데도, "간판이 없는 곳"이라서 소문에 소문을 통해 아이들이 들어갔던 곳. 그 학원은 당시 학력고사의 암기과목을 중점으로 한 곳으로, 사회 선택과목과 과학 선택과목만 있던 학원이었는데, 다니는 기간은 2주, 그리고 수업료가 과목당 70만원이었다. 80년대 후반의 가격이다. 단 2주를 다니고, A4 스무 장이나 됐을까. 그것만 외우면 끝이다. 덕분에 난 그곳에서 배운 두 과목을 모두 만점을 받았고. 돈에 감사해야 할지, 시대에 감사해야 할지, 그 선생님들께 감사해야 할지... 타이밍에 감사해야 할지... 아님 모두 일지... 내가 그 학원을 나오고 두어 달 지났을까. 뉴스에 간판 없는 그 학원이 등장했다. 그리..

끄적끄적 2021.03.04

받기만 했는데,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했는데...당신이 없다. 나의 영원한 멘토.

국민학교 언제였던가, 5~6학년 때쯤? 아빠와 단둘이 팔당에 보트를 타러 갔다. 아마 그게 아빠가 나한테 한 첫 번째 데이트 신청. 동생인 아들보다 유난히 장남(?) 같던 나를 더 이뻐하셨는데. 가는 길에 아빠랑 이런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는 닭고기를 좋아해서, 양계장집으로 시집을 보내야겠다~" "그럼 안되지~닭을 팔아야 되는데 어떻게 먹어? 나 그냥 부잣집으로 갈게~" "역시 넌 아빠딸 맞구나~근데, 너 시집 안 간다며? 아빠랑 산다며?" "아~그렇지~아빠가 보낸다니까 하는 소리지~" 그 날, 보트를 타고 아빠가 나를 데려간 곳은, 어느 식당이었는데. 방한칸에 큰테이블이 두 개가 펼쳐있고, 그 테이블 위에는... 닭갈비, 삼계탕, 닭볶음탕, 치킨 또 뭐였지... 하여간 닭으로 만들 수 ..

끄적끄적 2021.03.04

오래된 단상 - 고 2, 영어 과외 시간 그리고 핫초코

고2 때, 영어 과외를 그룹으로 했었다. 남학생 세 명과 나. 선생님이 모의고사 성적으로 직접 그룹을 만든 거라서, 서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이들. 남자 애들 셋은 단대부고, 휘문고, 서울고. 다들 각기 다른 학교를 다녔고, 성격도, 하는 행동들도 참으로 다른 애들이었다. 단대부고를 다니던 애는 키가 185보다 조금 더 컸던 거 같은데. 완전 거대 곰과에 속하는. 앞에 서면 아무것도 안 보이게 하는, 그런데 덩치에 견줄 만큼 잘난 척 대마왕이었고. 휘문고를 다니던 애는 키는 180 정도 됐던 거 같은데, 살짝 마르고, 말이 거의 없는 무뚝뚝의 절정. 딱 내스타일?^^ 마지막으로 서울고를 다니던 애는 마냥 천진한 까불이. 과외는 우리 집, 내 방에서 커다란 테이블을 놔두고 했는데. 어늘 날, 휘문고 애..

끄적끄적 2021.02.25

오래된 기억 - 국민학교 5학년, 어느 가을.

나는 국민학교 때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꽤 키가 큰 편이었는데, 그 시기에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보다 성장을 덜 했을 때라 웬만한 남자애들은 나에게 잘 덤비지(?) 않았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전교생 누구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는 계기가... 당시 내 짝꿍이었던 아이는 일명 일진. 전교짱이었다. 그러나, 학교 내에서 그 아이가 누구 하나 괴롭히는 걸 보지 못했고, 다만 주위 아이들이 그 아이를 모시는(?) 장면으로 그 아이의 존재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모든 행동들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통해서만 나타났다. 6학년 형들을 제치고 핸드볼부 주장이었던 그 아이는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나름 선망의 대상이었다. 겉보기에 괜찮은 외모에, 알 수 없는 파워에... 그러던 어느 날, 학교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다..

끄적끄적 2021.02.24

당신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누군가의 넋두리 섞인 글을 읽다가 편지가 쓰고 싶어 졌습니다. 이 글을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어차피 뻔한 말이나 할 거면서, 그래도 일단 써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가끔은 그 진부하고 식상한 얘기들이 나름의 위로, 위안 뭐 그런 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 아마 대부분의 여자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진하게 생각하냐의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이 내 손길이 필요 없어졌을 때, 그때의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얼마나 만족할 수 있을는지, 내 선택들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 나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얘기들을 들어보면, 인간사는 게 참 비슷하지만 각자의 이유라는게 있더라는 거죠. 왜 그 유명한 문장도 있잖..

끄적끄적 2021.02.17

당신의 미모는 내 수학 점수를 결정지었다.

중 2 때, 첫 수학 시간. 또각또각... 구두굽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와우~예쁘다... 첫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맨뒤에 앉아있던 나는, 다음 수학 시간에 앞에서 두 번째 있는 친구와 자리를 바꿨다. 맨 앞자리는 선생님과 가까웠지만, 계속 쳐다보기에는 목디스크 걸리기에 딱 좋은 자리이므로. "자리 좀 바꿔주라." "수학인데?" "어~수학이니까!!!" 알 수 없다는 친구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수학 시간 내내 난 선생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풀라고 하는 문제는 풀지도 않고 말이다. 급기야 "얘! 넌 문제 안 풀어? 왜 그렇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한마디. "예뻐서요..." 순간 선생님의 표정이란... 그 해, 2학기에 난 다른 학교로 전..

끄적끄적 2021.02.16

오래된 단상 - 그 겨울의 찻집, 담배 그리고 빨간 립스틱

대학교 1학년 때, 술만 마시면 조용필의 을 부르던 친구가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어린애가 왜 저런 청승맞은 노래를 부를까 싶었는데, 그 친구의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면서 익숙해진 건지, 그 친구가 좋아서 그랬는지, 어느 순간 술기운이 돌면 나도 모르게 그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담배피던 모습이 어찌나 섹시하던지, 담배를 피워볼까 고민하게 하던 친구. 소주는 한잔 마시면 취하면서, 발렌타인은 한 병을 넘게 마셔도 아무렇지 않았던 친구. 첫사랑에 실패하고 남자는 거들떠도 안보았던 친구. 가녀린 몸으로 군사학을 공부하고 싶다면서 러시아행을 감행했던 친구. 내가 하면 뭐든지 잘한다, 이쁘다해줬던 친구. 내 오랜 친구. 보고싶네...

끄적끄적 202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