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
액션, 스릴러 / 미국, 영국 / 152분 /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1. 10. 20
감독: 리들리 스콧
주연: 맷 데이먼(장 드 카루주 역), 조디 코머(마르그리트 역), 아담 드라이버(자크 르 그리 역), 벤 애플렉(피에르 역)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영화관을 갔다. 이 영화는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영화관에서 꼭 본다고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었다. 좋아하는 감독에, 좋아하는 배우라니. 팬으로서 당연히 봐줘야 하는 것이다. 옆지기한테 영화 예매했다고 통보만 하고, 영화 제목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묻지도 않는다. 가만히 보면, 정말 좋아하는 게 1도 같지 않은 우리 부부는 어쩌다 부부가 되었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시간에 촉박해서 쫓기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15분도 안걸리는 거리를 서둘러 나왔다. 9시 45분 조조였는데, 백화점 주차장에 도착한 게 8시 50분도 채 안되었다. 엘리베이터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서 8층을 눌렀다.(영화관은 신세계 8층에 티켓박스와 팝콘 박스가 있고, 9층에 상영관이 있다) 그런데, 8을 몇 번 눌러도 숫자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황해서 일단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서 눌러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8층에 올라가라는 거지? 아직 백화점 오픈도 하지 않은 시간이라서 다른 방법이 없을 듯한데 말이다. 그때 버스터미널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타시는 분이, 우리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운행하는 엘리베이터가 3대 있었는데, 2대는 백화점 쪽으로, 1대는 버스 터미널쪽으로 운행되는 상황이었다.) 영화관을 간다고 했더니, 영화 시작 10분 전이나 운행될 거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차로 돌아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영관이 한두 개도 아닌데, 10분 전에 올라갈 수 있으면 시간 내에 모든 사람이 입장이 가능한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한산하다고 해도 말이다. 검색을 했다. 역시나. 나처럼 당황했던 사람들의 글이 보였다. 그리고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써놨다. "백화점 문을 열지 않은 시간에, 즉 조조나 심야영화를 볼 때에는 고속터미널 4층 청년다방과 마차이 짬뽕 사이에 영화관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말이다."
그럼 그렇지. 방법을 찾았으니 올라가자고 하자, 옆지기는 그냥 저 엘리베이터 움직일 때 가면 안되냐고 한다. 찌릿~ 결국 9시 15분에 움직이는 걸로 합의를 보고, 차에서 있다가 15분에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그런데 아까 우리기 탔던 엘리베이터가 8층에 멈춰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아까 친절하신 아저씨의 말보다는 조금 더 일찍 엘리베이터는 움직이고 있었다.
예매해놓은 티켓을 발권하고, 영화관이 처음인냥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 정말 아무도 없는 것이다. 10분 정도 지났을 때, 한 커플과 한 가족이 보이는 게 다였다.
영화관 안에서는 팝콘을 못 먹으니, 테이크 아웃해서 사가란다. 그래서 영화 끝나고 큰 거 한통을 사서 나왔다. 나라도 사줘야 할 거 같은. 용량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 통을 뒤집어 보니 170 oz라고 쓰여있었다. 우리나라 스벅에서는 제일 큰 사이즈가 벤티이지만, 그 보다 한 사이즈 큰, 미국 스벅에서 살 수 있는 트렌타 사이즈의 용량(20oz)을 8개 반은 부을 수 있는 용량이었다. 와우. 물을 그렇게 마시라고 하면 숨도 못 쉴 거 같은데... 팝콘은 왜 잘 넘어갈까.
티켓을 보여주고 입장하는 곳에는 체온체크와 큐알코드 인식을 하게 되어 있다. 요즘은 모든 곳이 이러니, 이제는 이것도 당연하다 싶어 진다. 처음 큐알코드를 찍으라고 할 때는 무언가 내행동을 감시받는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상영관 안에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같이 영화를 본 사람이 총 10명도 안되는 거 같다. 영화관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어디 영화관뿐일까마는......
옆자리의 테이핑이 유독 신경이 쓰여 한 장 찍어봤다. 앉지 말라고 해 놓은거 까지는 좋은데... 뭔가 범죄현장 같다고나 할까.
너무 간만에 영화관에 가니, 마치 영화관에 처음 간 사람처럼 촌스럽게 서설이 길었다.
그럼 영화이야기를 해볼까.
이 영화는 에릭 재거의 <라스트 듀얼>을 영화화한 것이다. 에릭 재거는 UCLA의 영문과 교수로, 14세기 후반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다가, 그 이야기에 빠져 사료들을 조사해서 이 책을 썼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간단하게 표현하면 정말 단순할 수도 있다. 좋은 가문의 장과 별 볼 일 없는 집안의 자크는 일명 절친이었다. 그런데 권력의 끈에 붙은 자크는 승승장구를 하고, 반면에 장은 자기의 소유여야 하는 것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 그래서 둘은 등을 지게 된다.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았던 장은 미모를 겸비한 지참금이 많은 마르그리트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녀의 집안이 대역죄를 저지른 집안이라 그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과 자크가 화해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지만, 그 이후에 장이 집에 없는 사이에 자크가 마르그리트를 범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마르그리트는 그 사실을 장에게 이야기하고, 이는 소송으로 진행된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의 총애를 받던 자크는 그 사건을 권력의 힘을 빌어 넘어가려고 하지만, 장은 다른 방법을 취한다. 단지 소송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장과 자크가 결투를 해서 살아남는 자의 말이 진실이라며, 결투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장이 이기면 그 사실을 알린 마르그리트도 살아남겠지만, 장이 결투에서 지게 되면, 장도 목숨을 잃지만 마르그리트도 화형에 처하게 된다.
책에서는 기록들에 의해서 전해진 사실과 그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들을 계속 열거하면서 나간다. 반면에 영화는 장의 입장, 자크의 입장, 마르그리트의 입장에서 세 번 같은 사실,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책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면, 영화는 그 사실 안에서 인물들이 느꼈을 만한 감정들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안의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14세기의 여자의 신분과 법적 지위(아내가 강간을 당한 경우, 그건 여자가 당한 게 아니라, 남편의 재산이 침해된 걸로 간주된다. 물건도 아니고 말이지.), 그리고 당시 여성이 강간을 당한 경우 상황을 자세히 진술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도 여러번. 피해자가 가해자인 것처럼 질문을 받는. 현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상황이 어이없었고, 마음 아팠다. 아니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올라오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고부갈등은 있구나. 어쩔 수 없는 관계인가 싶은. 그리고 같은 상황을 기억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 참 다양한 면에서 사실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이게 바로 감독과 연출의 능력이겠지.
영화 개봉예고를 보면서 책을 먼저 구입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 맷 데이먼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봐줘야 되는 영화였지만, 그전에 역사적인 면을 책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그것을 또 영화로는 어떻게 옮겨놨는지 궁금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절반 정도 읽고, 영화를 보고 나서 나머지를 읽었다. 사실 책의 서두 부분은 너무나 역사적인 사실들로 시작해서,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읽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사실 굳이 알아야 되는 부분도 아니었지만, 글자만 읽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진도를 빼지 못했다. 덕분에(?) 절반밖에 읽지 못하고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는데,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 영화를 보면서는 캐릭터들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영화 후에 책은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차이점들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책과 영화를 함께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p. 115
강간범에 대한 기소와 처벌은 강간 피해자의 사회적 계급과 정치적 영향력에 크게 좌우되었다. 중세 프랑스에서 여성이 절도처럼 소소한 범죄를 저지르면 사형에 처해졌지만, 강간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들 다수는 단순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 벌금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아버지나 남편에게 합의금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강간이라는 범죄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보호자인 남성의 재산권을 침해한 기물파손죄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법원의 기록을 보면 강간 혐의로 기소당한 가해자들 중에는 교회에서 중책을 맡은 성직자들의 수가 다른 직종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보일 정도로 많은데, 그들이 속세의 법정이 아닌 교회 법정의 재판을 받는 '성직자 특권'을 요구함으로써 중형 선고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강간을 둘러싼 정황은 증인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법정에서 강간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극히 힘들었다. 특히 중세 프랑스의 경우,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간에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피해 여성은 범인을 고소할 수조차 없었다. 따라서 강간 피해자는 그 사실을 밝혀 보았자 얻는 것은 수치와 불명예밖에는 없다는 범인들의 협박에 굴복해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의 한 장면중에 시어머니인 니콜은 마르그리트에게 네가 뭐가 그리 대단해서 그걸 문제 삼아 이렇게 일을 키우냐는 말을 한다. 누구는 강간 안 당해봤냐며. 나도 당했지만, 억울해도 그냥 넘어갔다고 말이다. 그 말에 마르그리트는 그래서 얻게 된 게 뭐냐는 질문을 한다. 그때 시어머니의 대답... 지금 살아있다는 것. 참 짧은 대화 속에 많은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p. 132~133
프랑스 법에 의하면 국왕에게 친히 상고하는 귀족은 소송 상대방에게 사법 결투, 즉 결투재판을 신청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모욕한 상대와의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쓰이는 명예 결투와는 달리, 사법 결투는 어느 쪽의 결투 당사자가 거짓 선서를 했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정식 법 절차였다. 당시 이런 결투의 결과는 신의 의지와 부합하는 진실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 연유에서 결투 재판은 judicium Dei, 즉 '신의 심판'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중세 말기가 되자 결투 재판이라는 관습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교황들은 결투행위가 성서가 금기시하는 신을 시험하는 행위라면서 비난했고, 대귀족들의 강대한 권한을 삭감함으로써 왕권 강화에 나섰던 왕들도 자신들의 사법권을 침해하는 결투 재판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뒤에도 결투는 형사재판에서 주군이 내린 판결에 불복한 귀족에게는 최후의 상고수단으로 남았다.
p. 235
마르그리트는 아직 법적으로 유죄가 선고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형 판경을 받은 상태에서 결투를 관람하고, 남편이 결투에서 목숨을 잃을 경우는 그 즉시 처형될 예정이었다. 전통적으로 애도와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색은 사형집행인과 사형수의 옷 색깔이기도 한 경우가 많았고, 화형 선고를 받은 마녀와 이단자들도 검은 옷을 입었다. 마르그리트가 입은 검은 로브는 그녀가 오늘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여성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리들리 스콧 감독의 다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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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맷 데이먼의 다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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