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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김재진 p. 36~37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 만나러 가느라 서둘렀던 적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도착하지 않은 당신을 기다린 적 있습니다. 멀리서 온 편지 뜯듯 손가락 떨리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보여 여기에요, 여기에요, 손짓한 적 있습니다. 차츰 어둠이 어깨 위로 쌓였지만 오리라 믿었던 당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입니다. 어차피 삶 또한 그런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오지 않듯 인생은 지킬 수 없는 약속 같을 뿐 사랑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실망 위로 또 다른 실망이 겹쳐지며 체념을 배웁니다. 잦은 실망과 때늦은 후회. 부서진 사랑 때문에 겪는 아픔 또한 아득해질 무렵 비로소 깨닫습니다. 왜 기다렸던 사람이 오지 않았는지, 갈망하면서도 왜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

북리뷰/문학반 2021.12.30

[쓸쓸해서 머나먼] 최승자

최승자 2010 p. 13 세월의 학교에서 거리가 멀어지면 먼 바다여서 연락선 오고 가도 바다는 바다 섬은 섬 그 섬에서 문득 문득 하늘 보고 삽니다 세월의 학교에서 세월을 낚으며 삽니다 건너야 할 바다가 점점 커져 걱정입니다 p. 32~33 어떤 한 스님이 어떤 한 스님이 한 백 년 졸다 깨어 하는 말이 "心은 心이요 物은 物이로다" 하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잘 섞이면 心物이 만들어지고 物心이 만들어지고 사다리의 어느 위 계단으로 올라가면 초롱초롱 조롱박들이 한창 열려 있다 그리하여 心物이 物心이 되고 物心이 心物이 되고 (실인즉슨 心이 物이 되고 物이 心이 되고) 한번 해보자 하면 그 구별들은 한이 없고 그런 것이 아니오라 하면 순식간에 똑같은 세상이 된다 (아주 우울한 날에는 우윳빛 막걸리를 한두 잔..

북리뷰/문학반 2021.12.30

[대추 한 알] 장석주 시인의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장석주 시선집 2021 p. 30~31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나는 안다, 내 깃발은 찢기고 더이상 나는 청춘이 아니다. 내 방황 속에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다. 한번 흘러간 물에 두 번 다시 손을 씻을 수 없다. 내 어찌 살아온 세월을 거슬러올라 여길 다시 찾아올 수 있으랴. - 쉽게 스러지는 가을 석양 탓이다. - 잃어버린 지도 탓이다. 얼비치는 벗은 나무들의 그림자를 안고 흐르는 계곡의 물이여, 여긴 어딘가, 내 새로 발 디디는 곳 암암히······ 황혼이 지는 곳. - 서편 하늘에 풀씨처럼 흩어져 불타는 새들. - 어둠에 멱살 잽혀 가는 나. p. 32~33 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

북리뷰/문학반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