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166

시몬느 드 보부아르 <위기의 여자>

시몬느 드 보부아르 의 원제는 La Femme Rompue인데, rompue는 '관계가 끊어진, 계약이 깨진'의 의미를 갖는다. 동사 rompre는 관계를 끊다, 연인과 헤어지다라는 의미.우리말로 뭐라고 하면 의미 전달이 매끄럽고 쉬웠을까. 적어도 위기...는 아닌거 같다. 그리고 이 표지는 아니지 않는가. 소설을 안읽었던지, 이 그림을 모르던지. 모딜리아니가 사랑한 잔느의 그림을, 이렇게 이런 이야기의 표지로 삼는다는 건, 옳지 않다. 어쩌면 이리도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세상의 중심이고 모든 것일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어찌나 속이 터지고 답답하던지. 애인이 생겼다는 남편 모리스의 고백에 삶의 모든 빛을 잃어버리는 아내 모니크.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사이의 한 여성에게서, 보부아르가 느꼈던 감정이 어느..

북리뷰/문학반 2020.11.25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은 책. 간만에 인생책을 한 권 추가한다.줄거리가 있으나 줄거리가 필요 없는 책. 오히려 그것에 초점을 맞추면 책의 의미가 없어지는 책. p. 25그가 라틴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장들이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었고, 뭔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언어는 온갖 소란스러움에서 떨어져 있었고, 확고부동하며 아름다웠다. p. 28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p. 33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북리뷰/문학반 2020.11.22

비톨트 곰브로비치 <페르디두르케>

비톨트 곰브로비치 낯선 작품에, 조금은 낯익은 작가이름을 보는 순간. 곰브로비치? 곰브리치와 혼동되어, 미술사에서 소설까지 썼나 했다. 그러나 의 곰브리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라는. 이런 기회에 이름도 좀 정확히 인식해두고. 책표지 뒤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위대한 작가, 곰브로비치" -밀란 쿤데라, 라고 씌여 있는 게 보였다.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레이먼드 카버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단편집 한 권 보고 이렇게 표현해서 좀 그렇지만...). 밀란 쿤데라가 좋아하는 이 사람은?결론은? 몇페이지 넘어가기도 전에 찜콩작가로 등극. 비톨트 곰브로비치(1904~1969)는 폴란드 태생의 작가이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후 나치치하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고, 공산정권에서는 탄압을 받았던 책이지만, 1950년대에..

북리뷰/문학반 2020.11.21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차가운 피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20년대, 한 남자가 남극 근처의 외딴섬에 자원해서 가게 된다. 사람도 싫고 세상도 싫고, 그랬던 그가 이곳에서 할 일은 기상관. 하지만 섬에 도착해보니 전임기상관은 보이지 않고, 유일하게 보이는 사람인 등대지기는 그에게 인간적인 호의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알 수 없는 정체들과의 전투(?)가 시작된다. 막아내지 못하면 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처음에는 아일랜드와 영국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역사와 관련된 책인 줄 알았다. 뒤로 갈수록 SF도 아닌 것이 스릴러도 아닌 것이. 그런데 묘하게 흡입되는 무언가가 있다.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미움, 고독함과 원초적 공포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잔혹함, 소통되지 않는 것..

북리뷰/문학반 2020.11.20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솔제니친은 1945년 반소행위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된다. 여기서 반소행위로 치부된 것은 솔제니친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콧수염남자'라고 빗댄 것이 탄로난 것이다. 단어하나 때문에 8년의 수용소라니. 그러나 이렇게 어이없게 수용소로 간 사람은 너무도 많았다. 1970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나, 소련 정부의 방해로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소련에서 추방 당하게 된다. 그는 심지가 곧은 건지 현실적이지 못한 건지, 구소련 체제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하여 어느 진영에서도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 된다는 것. 이 작품은 어떤 특별한 정치행위나 범죄행위를 하지 않은 ..

북리뷰/문학반 2020.11.19

김려령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김려령 작가의 말 중에서. (p. 150) 많은 어린이가 학업과 폭력과 가난과 질병 등 여러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저 먼 미래로 가기도 전에 현재가 너무 아픕니다. 어른들이 주변을 좀 더 살피고 마음을 더 썼으면 어땠을까요.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세상의 모든 어른이 함께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했습니다. 이 동화는 아픈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아이들이 고마워서 쓴 글입니다. 여러분이 덜 힘들도록 어떻게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나라의 기둥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최선을 다해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오. 사랑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다. 새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에 잠시만 살거라면서 오게 된 철거 직전..

북리뷰/문학반 2020.11.16

나쓰메 소세키 <마음>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메이지 시대의 대문호로, 근현대 일문학의 아버지로 칭해진다. 2004년 말까지 천엔짜리 지폐의 인물이었으며, 그 이후에는 아래 사진의 노구치 히데요(의사이자 세균학자, 매독과 황열병 연구로 유명)로 바뀌었다. 이 소설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 주인공인 대학생 나는, 가마쿠라(당시에는 이곳이 유명한 피서지였다)에서 우연히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진 한 사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의 집을 여러 번 방문하게 된다. 그 사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아버지는 팥밥을 지어 사람들을 부르자고 한다. (일본에서는 축하할 일이 있으면 팥밥을 지어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이 ..

북리뷰/문학반 2020.11.15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p. 46~47 "나의 생각은, 발설한 순간" 나의 생각은, 발설한 순간, 더 이상나의 생각이 아니다죽은 꽃, 내 꿈에 떠다닌다.바람에 실려 갈 때까지. 흐름을 벗어날 때까지, 외부에서 오는 행운으로.내가 말을 하면 느껴진다.내가 단어들도 내 죽음을 조각하고 있음이,영혼을 다해 거짓말 하는 것이. 그렇게 말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나 자신을 속이고,나는 더 새로운 허구의존재를 만든다, 내 존재인것처럼 꾸미는. 아, 이미 생각하면서 들린다.내면의 끝에 자리하는 목소리.내 내면의 대화 자체가,나와 내 존재를 가른다. 하지만 내가 사색하는 것에공간의 목소리와 형태를 부여하는 바로 그 때가 어떤 끈이 끊기며, 내가 나와 나 사이의무한한 심연을 여는 순간. 아, 나와 나 사이가완벽히 조화..

북리뷰/문학반 2020.11.15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태어나게 된 이유 자체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장기를 주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라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신체의 일부를 기증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부품과 같은 존재로서의 인간.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의 제한된 삶, 알고 나서 느끼게 될 두려움. 그래도 '하나의 생명으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인데... 생명의 우열에 대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 것 인지에 대하여,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기적 발현들에 대하여, 혹시나 이런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하여...너무 많은 것을 품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p. 30~31상대가 자기가 만든 물건들, 그리고 자기가 상대가 만든 물건을 사적인 보물로 삼는 일이 어떻게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시 헤일셤에서 어떤 대접을 ..

북리뷰/문학반 2020.11.14

손원평 <프리즘>

이 소설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이 있다. 예진, 도원, 호계, 재인.드라마처럼 현실에서 우연(?)으로 엮이어 있는 관계.그렇지만 하나하나의 상황들이 흔하지 않더라도 분명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그래서 잘읽히지만, 그래서 조금은 불편하고 아쉬운. p. 48결국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거다. 대개의 경우, 시작은 다르지만 과정은 비슷하고 결과는 언제나 똑같은 법이니까. p. 118심심함과 외로움의 차이는 뭘까.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인가.짧고 긺의 차이인가. 깊고 얕음의 차이인가. 그렇다면 역시 나는 깊이가 없는 사람인걸까. 아니면 쉽게 마음을 작동시켜버리는 가벼운 사람인가. 그러나 결코 심심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분명히, 정말로, 확실히 그렇다. 예진은 다짐하듯 생각해보지만 그럼에도 마..

북리뷰/문학반 2020.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