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166

매트 헤이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The Midnight Library>

매트 헤이그 첫 문장: 죽기로 결심하기 스물일곱 시간 전, 노라 시드는 낡아 빠진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로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들여다보며 무슨 일이든 생기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느닷없이, 정말로 일이 생겼다. 35살의 노라는 어느 날 갑자기 키우던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어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다니던 악기점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고, 피아노를 가르치던 집에서 수업을 그만한다는 전화를 받았고, 그나마 약이라도 타다가 갖다 주던 배너지씨에게서도 이제 그만 그 일을 해줘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불필요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기로 결심하고 유서를 남긴다. 처음에는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안개가 걷히면서 직사각형 형체의 건물이 보였다. 그 앞에는 시계가 자정을..

북리뷰/문학반 2021.07.16

온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 도리스 레싱 단편선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단편선 이 책 자체는 단편선이라 11편의 단편들을 품고 있다. 그 중 이 포스팅에서는 라는 소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 문장: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 런던의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인 매슈 롤링스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수전. 둘은 배울만큼 배웠고, 벌이도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고 옳은 길만을 선택하는 감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커플이 되었고, 가정을 이루었다. 정원이 딸린 집을 구입하고, 네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수전과 매슈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엄마가 필요하다는 데 서로 동의를 하고, 네 아이가 일정한 나이가 된 후..

북리뷰/문학반 2021.07.06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집 이 시집은 원래 박경리 작가 생전에, 시집 출간을 위해서 60편을 준비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다 채워지지 못했다. 미발표된 시 36편과 현대문학에 기고했던 3편이 같이 수록되어 총 39편의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49재에 맞춰 출간된 이 시집은, 더 이상 박경리 작가의 글을 접할 수 없게 된데에 대한 아쉬움과 애석함을 더 진하게 만든다. p. 13 산다는 것 中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p. 15~16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 같이 횡덩그레..

북리뷰/문학반 2021.06.27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에밀 아자르 , La Vie devant Soi "출판사에서도 원작자가 누구인지 몰라 광고를 통해 작자를 찾기까지 한 '75 공쿠르 상 수상자 에밀 아자르! 그는 누구인가? 정말 그가 썼는가? 왜 상을 거부했나? 전 세계에 파문을 던진 아자르의 충격!" 1976년에 출간된 문학사상사 판 에는 작가 소개 대신 이 문구가 자리하고 있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은, 1980년 로맹 가리가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 이후, 그가 남긴 유서를 통해 밝혀졌다. 로맹 가리는 1956년 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는데,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으로 또 한 번 공쿠르 상을 받아,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되었다.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

북리뷰/문학반 2021.04.07

콜슨 화이트헤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콜슨 화이트헤드의 글들은 즐거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뗀다는 것이 참 어렵고, 눈이 다가가 있지 않을 때조차 온 마음이 그곳에 있게 된다. 내가 마치 탈출하는 흑인 노예라도 된 듯이, 주인공 코라의 상황에 따라 나 역시 그 상황에 빠져있었다. 책의 끝까지 완전한 자유는 있지 않았다.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1860년 미국의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기 이전인 1800년대, 남부의 노예들이 북부의 자유 주나 캐나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점조직의 이름이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였다. 노예제를 반대하던 흑인들과 백인들이 도망치는 노예들에게 비밀리에 먹을 것과 은..

북리뷰/문학반 2021.04.07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이 궁금해졌다. 영화는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의 말과 행동, 표정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어서,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있지 않을까, 내가 잘못 받아들인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책은 글을 통해서 전달해야 하니 그들의 심리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영화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했다. 세부적인 몇몇 곳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도 책을 집어 든 건 잘한 거 같다. 영화에서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생뚱맞은 부분들이 있었는데, 책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영화 리뷰에서 대강의 줄거리는 써놨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인 1944년에 출생한 저자는, 전쟁이나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그들의 부모세대와 그 윗세대의 책..

북리뷰/문학반 2021.03.30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나(작중 화자)에게는 나보다 12살 어린 동생 '니나'가 있는데, 니나가 열 살때, 나는 결혼을 하고 외국에 나가 살면서 니나와는 교류없이 지낸다. 그러다가 뜻밖의 장소에서 한번 마주치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에 헤어지고, 아홉달이 지난 어느날 니나에게서 전화를 받게 된다. 자기생일에 좀 와달라고. 생일잔치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여러 가지 의논하고 싶은게 있다면서. 니나가 오라는 곳으로 가니, 얼마 있으면 이곳을 떠난다면서 이미 가구는 없고, 포장되어 있는 짐 조금과 담요 몇장이 있는 소파, 탁자, 책, 정원용 의자, 찻잔들, 가스레인지 그리고 그 위에 주전자 정도만 있었다. 그리고 소포와 편지들. 우연히 눈이 가게 된 소포를 보고 창백해지는 니나를 보자, 나는..

북리뷰/문학반 2021.03.25

살아간다는 것, 위화 <인생>

살아간다는 것, 위화 이 책은 위화의 의 개정판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p. 8~9 이 작품의 원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다. 그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 이 작품은 개인과 운명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과 그의 운명은 서로 상대방을 포기할 방법이 없고, 서로 원망할 이유도 없다. 그들은 살아가는 동안은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함께 가고, 죽을 때는 빗물과 진흙 속으로 함께 녹아든다. 나는 이 눈물의 넓고 풍부한 의미와 절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

북리뷰/문학반 2021.03.17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숲 속의 생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사진은 185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으로 '더스토리'에서 출판된 책과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으로 '길벗어린이'에서 나온 이다. 이 작품은 데이비드 소로가 1845년 여름부터 1847년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2년 2개월 2일간 '월든' 호숫가에서 지낸 생활과 그때의 생각들을 기록한 글이다. 그곳에 들어가서 생활하기 전에, 도끼 한 자루만 가지고 나무를 베어 직접 오두막을 짓는다. 가구들도 간단한 것들은 만들고, 살림살이도 아주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사다 놓는다. 그리고 직접 밭에서 작물들을 키우고, 빵을 만들고, 물고기를 잡아서 식사를 해결한다. 그리고 정확히 생활을 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어갔는지 숫자로 가계부처럼 써놓는다. 그러면서 근대문명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실험하게 된..

북리뷰/문학반 2021.03.17

겨울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멜리 노통브 <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이 소설은 우리에겐 로 더 익숙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이다. 는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에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한겨울의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떠나는데, 그 길을 가는 내내 죽음에 대한 상념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 소설도 비슷한 맥락을 따라간다. 큰 그림으로 보자면 말이다. 이야기는 비행기를 폭파시킬 계획을 하고 있는 한 남자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이름은 조일. 뱃속에 있을 때, 부모님은 딸이라는 확신으로 '조에'라는 이름을 골라놨는데, 막상 아들이 나오자 어떻게 해서든 조에의 남성형을 찾고자 하셨고, 그렇게 사전에서 발견된 이름이 '조일'이었다. 무슨 뜻을 가졌는지 찾아보니, 그리스의 소피스트의 이름이었고, 에 대한 혹평으로 군중들에게 돌..

북리뷰/문학반 202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