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뭉게구름도 아니다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우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가을에는,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해마다 가을 언저리에 있을 때면 이 시가 생각이 난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