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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가을에는 ----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뭉게구름도 아니다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우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가을에는,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해마다 가을 언저리에 있을 때면 이 시가 생각이 난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

끄적끄적 2020.10.15

김유진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가끔 이런 종류의 책이 필요한 이유는 '어디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는 데 있다. 사실 몰라서 안 하는 경우보다는 알지만 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물론, 알아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행동으로 옮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해보고, 그게 익숙해지면서 좋은 점을 알게 된다면 누가 뭐라 한들 알아서 하게 될 것이다. 한참 도시건축가 김진애씨에게 빠져있을 때, 그의 글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글귀를 봤다. 올빼미형인 나는 새벽형으로 바꿔보겠다고 일찍 일어났는데, 내가 일어나자 작은 아이가 잠을 깨서 거실로 나오는 바람에 나만의 새벽이 아니라 피곤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더..

버킷리스트(2008)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백만장자이지만 성격이 괴팍하여 주위에 아무도 없는 사업가인 '잭(잭 니콜슨)'과 가난하지만 가족을 위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정비사인 '카터(모건 프리먼)'는 삶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병실 옆자리에서 마주한다. 너무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명은 처음에는 옥신각신하게 되지만. 잭의 제안으로 카터는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 보기로 하는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몇 달, 아니 며칠이라면, 난 무엇이 하고 싶을까? 그런데 막상 생각이 가다가 멈춘다.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이겠지. 물론 살면서, 이건 좀 하고 싶다라는 버킷리스트들은 존재하지만, 그것 역시 그닥 소중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언제든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안되는..

무비리뷰 2020.10.12

그랜 토리노(2008)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영화 장르에 범죄라는 단어가 보이면 누가 나오든지 잘 안 보게 된다. 아마 이 영화도 그래서 패스하지 않았나 싶은. 몰랐다면, 보지 못했다면 많이 아쉬웠을 영화이다. 엔딩곡을 들려준 누군가에게 감사한다. 한국전 참전의 상처를 안고 사는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베트남 동쪽 출신 이웃집 소녀 '수와 그의 동생 '타오'를 통해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데... 몽족 갱단들은 타오에게 자신들과 함께 하기를 강요한다. 그 입회의 시작을 월트가 소유하고 있는 차, 그랜 토리노를 훔치게 하고, 그 실패 뒤로 계속 타오를 괴롭힌다. 이에 월트는 갱단 한 명에게 손맛을 보여주나, 그 보복으로 '수'가 크게 다치게 되고, 월트는 갱단이 더 이상 이웃집 '친구들'을..

무비리뷰 2020.10.11

그럴 때가 있었다

8~9년 정도 전이었나. 남자 1호의 일 때문에 잠시 어느 지방에 머물렀는데, 그때 처음으로 5일장이라는 곳에 가봤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그런 5일장을 말이다. 막 봄이 다가서는 계절이라, 널린 게 봄나물이고, 꽃이었다. 시끌벅적한 트로트하며, 할머니들의 연이은 나물들하며...와~~~ 이런 걸 직접 보는구나 내가...감탄 아닌 감탄을 하며 시장 초입에 들어서는데... 정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쑥, 냉이, 달래 뭐 그런 것들을 바구니마다 담아 놓고 팔고 계셨다. 옆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물들을 꺼내신 건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들이 보였고...'내가 저거 모두 사면, 할머니 들어가실 수 있나?'어차피 먹을 건데...이때밖에 봄나물 향이 나지 않는데...냉동 시킬까. 뭐 이런 생..

끄적끄적 2020.10.10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최근에 손자병법을 다시 봤다.안보였던 것들을, 어쩌면 피상적인 글자로만 인식되던 것들을 이번에는 마음이 받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잘못 알려진.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심지어 에서는 백 번 이기는 것이 훌륭한 전략이 아니라고 했다. 싸운다는 것은 적은 물론 자신도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자는 온전한 승리(전승)는 싸우지 않고 적의 것을 그대로 얻는 것이라 했다.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길수도 없겠지만, 백 번 이긴다고 치자. 과연 원래 가지고 있던 인간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가까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백 번을 이긴들...그 사이에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애정이라는 거 자체가 잔존할 수 있을까. 아마 어감이..

끄적끄적 2020.10.09

김승호 <돈의 속성>

책을 펼치면 첫장에 이런 글귀가 써있다. 성공으로 가는 위대한 비밀의 규칙은 없다. 성실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허세를 부리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것과 같은 작은 비밀이 있을 뿐이다. 책에서 가장 와닿는 표현이었다. 이 책은 돈의 다섯 가지 속성과 부자로 살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네 가지 능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p. 7 돈의 다섯 가지 속성으로, '돈은 인격체다, 규칙적인 수입의 힘, 돈의 각기 다른 성품, 돈의 중력성, 남의 돈에 대한 태도'를 말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능력으로는 '돈을 버는 능력, 모으는 능력, 유지하는 능력, 쓰는 능력'을 다룬다. 그리고 이것을 각기 다른 능력으로 이해하고 각각 다르게 배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돈은 인격체라는데 공감이 된다. 잠시 여담을..

북리뷰/경제반 2020.10.09

고마워. 단역으로 와줘서.

삶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많은 것들이 쉬워질 줄 알았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지 않냐고 가벼이 여기다가 혼줄이 났을 수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람과의 관계이다. 에리히 프롬의 이라는 책에 보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절반의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으니 고쳐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나에게는 그저 이론일 뿐이었다. 그래? 당연히 그래봐야지. 당연한 걸 왜 쓰고 그러지...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관계를 풀기 위해 다가간다는게 얼마나 주저되고 힘겨운 일인지 제대로 느낀 적이 있다. 그래도 한번, 실천은 해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시도해봤지만, 상대가 나와 같은 뜻이 아니라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메세지만 전달받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이유와 ..

끄적끄적 2020.10.07

인생의 모든 순간은 첫경험이다

어느 순간을 맞이하고 있든...모든 순간은 내 인생의 첫 순간이고, 첫 경험이다. 영화 처럼 같은 날을 반복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럼 조금 서툴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조금은 내 자신에게 너그러워 질 수 있는거 아닌가. 누구나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는 넘어져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넘어지는 아이조차 웃으면서 넘어지고...놀이인냥 다시 일어나고, 넘어지면서 배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그런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넘어지는 걸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의 인생에 실패라는 시선을 두게 된다. 어찌보면 살아가는 모든 게 첫걸음과 다르지 않을텐데 말이다. 난 오늘도 다시 오늘의 걸음마를 시작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삶이 뭐 별난 것인가. 이렇게 쌓이면 되는 ..

끄적끄적 2020.10.06

생각이 넘치는 날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 조금의 간섭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집은 방목형이었다. 일종의 테두리는 있지만. 그것조차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펜스 같은거. 아무도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규정짓지 않았음에도. 철저히 가부장적인 집. 그러나 그 가부장을 휘두르는 남자들이 내게는 든든한 우상이었다. 마치 나를 장손인듯 대했으니까. 실존하는 그들의 씨종자(그들의 표현대로)인 내동생이 있었음에도. 내가 두 남자, 할아버지와 아빠로부터 들은 말은 딱 두 가지이다. 그게 전부다. 그 이상의 무엇도 없었다.그래서 난 상의나 조언을 구하는게 아니라, 늘 나의 뜻을 통보했다. 그럼 그걸로 끝이었다.내 모든 결정을 어떤식으로든 존중해주셨으니까.물론 너무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으..

끄적끄적 202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