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문학반 166

[시][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최백규 시집

최백규 2022 최백규 시인은 1992년 대구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동인 시집 가 있다. 창작동인 '뿔'로 활동 중이다. 시집에서 남기고 싶은 시 p. 15 섬광 착한 사람을 사랑해서 간신히 착해져보려 하던 날들이었다 젊은 아버지는 마른 세면대 앞에서 덜 밀린 턱수염을 쓸며 나를 그렸으나 잘되지 않았다 짙은 안개가 비 냄새를 몰아왔지만 우기가 너무 멀었다 낙엽이 구르는 거리에 어둠만이 젖는 듯하다 휘발했다 번번이 살아남고 더러는 해하기도 하는 호시절이었다 젊은 아버지는 적당한 육체와 한가지 뜻이 있었고 잘못과 실패를 알았다 태운 냄비나 붙잡고 층계참에 주저앉아 남은 동전을 헤아린다든가 현관의 우산을 보며 자신만 기다리는 아내의 장마..

북리뷰/문학반 2022.02.08

[에세이][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1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1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대하여(책 앞 커버 안의 내용) 이 책은 일본에서 출판된 책이 아니라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이런 책을 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따라 출판되었다. 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 p. 22 주관적인 인식이지만, 그저 흘러가는 '현재'일뿐인 인터넷 공간에 순간 웅덩이가 생긴 느낌이었다. 웅덩이가 생기면 사람은 처음으로 물을 의식한다. 그 의식이 쌓여 비로소 '앎'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p. 24~25 영화제는 나라는 존재가 자명하게 휘감고 있는 '정치성'을 표면화하는 공간이다. 눈을 돌리든 입을 다물든, 아니 그 '돌리고' '다무는'행위 자체도 정치성과 함께 판단된다. 하지만 이는 물론 영화감독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사회에 ..

북리뷰/문학반 2022.02.07

[시][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용택의 사랑시 모음

김용택 2021 김용택의 사랑시 모음 김용택 시인이 자신의 시 중에서 사랑시를 모아 정리한 시집이다. 최근 작품도 일부 포함되어 있고, 김용택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 시집 곳곳에 들어있다. p. 20 파장 네 마음 어딘가에 티끌 하나가 떨어져도 내 마음에서는 파도가 친다 p. 23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P. 26 인생 사람이, 사는 것이 별건가요? 눈물의 굽이에서 울고 싶고 기쁨..

북리뷰/문학반 2022.02.07

[시][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신용목 시집

신용목 2017 신용목 2017 p. 12~13 가을과 슬픔과 새 슬픔이 새였다는 사실을 바람이 알려주고 가면, 가을 새들은 모두 죽었다. 사실은 흙 속을 날아가는 것 태양이라는 페인트공은 손을 놓았네 그 환한 붓을 눕혀 빈 나뭇가지나 건드리는데, 그때에는 마냥 가을이라는 말과 슬픔이라는 말이 꼭 같은 말처럼 들려서 새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네 사실은······이라고 다른 이유를 대고 싶지만, 낙엽이 새였다는 사실을 바람이 알려주고 가는 가을이라서 날아오르는 것과 떨어져내리는 것이 꼭 같은 모습으로 보여서, 슬픔에도 빨간 페인트가 튀는데 나뭇가지라는, 생각에 붓을 기대놓고 페인트공은 잠시 바라보네 그러고도 한참을 나는 다리 위에 앉아 있다 이 무렵, 다리를 건너는 것은 박쥐들뿐······ 단풍의 잎들..

북리뷰/문학반 2022.02.06

[당신의 아름다움] 조용미 시집

조용미 2020 조용미 2020 p. 12~13 당신의 아름다움 당신은 늘 빛을 등지고 있다 내가 만든 구도이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더불어 당신의 아름다움은 윤리적이어야 한다 당신은 최종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빈틈없어야 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고독한 사건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나로부터 발생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내게 늘 가장 큰 시련이다 당신 뒤에는 빛이 있다 당신은 빛을 조금 가리고 있다 p. 16~17 내가 없는 거울 자다 깨어 거울 앞 지나다 얼핏 보니 내가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잠깐 잘못 본 건가 다시 거울 앞으로 가기가 겁이 난다 거울 속의 나는 통증을 알지 못하여 이 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잠시 방심하고 ..

북리뷰/문학반 2022.02.05

[립싱크 하이웨이] 박지일 시집

박지일 2021 박지일 2021 p. 28 못질하기 좋은 해안가 숲 없고 민박 없고 도로도 없다. 나는 그저 못질하기 위해 태어난 망치다. 어디 절실함이라도 만들어내기 위해 이 순간 태어난 나는 망치다. 나는 처음으로부터 멀어진다. 사방에 깔린 것이 모래니 내려칠수록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나를 기록하는 네가 있어 오늘 해안가로 충분하다. 밀려오는 파도 있으니 밀려가는 파도 있을 것이고 나는 당연한 것만 말하고 싶고 당연한 것이라도 말하고 싶다 제발. 이 순간 나는 너밖에 몰라. 너를 사랑한다. 상투적인가? 질문의 답은 눈 내린다. 네 몫이다. 나는 허공에서 시작하여 바닥에서 끝장나고 싶다. 이것은 눈에 관한 이야기 아니고 지금 이 순간 성실하게 망치 내려치는 나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너의 기록에 ..

북리뷰/문학반 2022.02.04

[개와 술] 쑬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마셔본 술과 인생 이야기

쑬딴 2022 쑬딴 2022 들어가며 중에서(p. 8) 내가 전 세계를 다니며 마신 술과 그 술에 얽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술을 마시면 작은 용기가 생기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어갔으면 좋겠다. 인생은 생각보다 유쾌하고, 아직 살만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많은 작가들이 서문에 '사랑하는 가족'이야기를 왜 적는지 궁금했었는데, 두 번째 책을 내려고 보니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회사에 다닐 때 출장으로 갔던 곳과 살았던 곳, 그리고 여행으로 가게 된 곳들에서 마시게 된 술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작가의 '들어가며'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작은 이야기들 속에 유쾌함이 살아있다. 작가는 위로와 용기..

북리뷰/문학반 2022.02.03

[빛의 자격을 얻어] 이혜미 시집

이혜미 2021 이혜미 2021 p. 17 빛멍 돌이켜보아도 무례한 빛이었다. 최선을 다해 빛에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응고되지 않는 말들, 왜 찬란한 자리마다 구석들이 생겨나는가. 너무 깊은 고백은 테두리가 불안한 웅덩이를 남기고. 넘치는 빛들이 누르고 가는 진한 발자국들을 따라. 황홀하게 굴절하는 눈길의 영토에 따라. 지나치게 아름다운 일들을 공들여 겪으니 홀로 돋은 흑점의 시간이 길구나. 환한 것에도 상처 입는다. 빛날수록 깊숙이 찔릴 수 있다. 작은 반짝임에도 멍들어 무수한 윤곽과 반점을 얻을 때, 무심코 들이닥친 휘황한 자리였다. 눈을 감아도 푸르게 떠오르는 잔영속이었다. 휘황한 - 휘황하다: 광채가 나서 눈부시게 반짝이다. 행동이 온당하지 못하고 못된 꾀가 많아서 야단스럽기만 ..

북리뷰/문학반 2022.02.01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시집

신경림 2013 신경림 2013 p. 9~10 너희 사랑 - 누이를 위하여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반 병의 소주와 한 마리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 여러 번이었지만 뉘우치고 다짐하기 또 여러 밤이었지만 망설임과 헤매임 속에서 너희 사랑은 굳어졌다 새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너희 사랑은 깊어졌다 돌팔매와 최루탄에 찬 마룻바닥과 푸른옷에 비틀대기도 했으나 소주집과 생맥주집을 오가며 다시 너희 사랑은 다져졌다 그리하여 이제 너희 사랑은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낙서처럼 눈에 익은 너희 사랑은 단비가 되어 산동네를 적시는구나 훈풍이 되어 산동네를 누비는구나..

북리뷰/문학반 2022.01.30

[좋은 날에 우는 사람] 조재도 시집

조재도 2007 조재도 2007 p. 12~13 좋은 날에 우는 사람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사람은 좋은 날에도 운다 환갑이나 진갑 아들 딸 장가들고 시집가는 날 동네 사람 불러 차일치고 니나노 잔치 상을 벌일 때 뒤꼍 감나무 밑에서 장광 옆에서 씀벅씀벅 젖은 눈 깜작거리며 운다 오줌방울처럼 찔끔찔끔 운다 이 좋은 날 울긴 왜 울어 어여 눈물 닦고 나가 노래 한 마디 혀, 해도 못난 얼굴 싸구려 화장 지우며 운다, 울음도 변변찮은 울음 채송화처럼 납작한 울음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듯한 울음 한평생 모질음에 부대끼며 살아온 삭히고 또 삭혀도 가슴 응어리로 남은 세월 누님이 그랬고 외숙모가 그랬고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했을, 그러면서 오늘 훌쩍거리며 소주에 국밥 한 상 잘 차려내고 즐겁고 기꺼운 하루를..

북리뷰/문학반 202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