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227

[책] 이병률 시집 <바람의 사생활>

이병률 시집 p. 12~13 나비의 겨울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화초에 물이 흥건하고 밥 지은 냄새 생생하다 사흘 동안 동해 태백 갔다가 제천 들러 이틀 더 있다 왔는데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누군가 내 집에 있다 갔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누군가는 내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화초를 안쓰러워하다 갔다 누군가는 내 집에 살다 갔는데 나는 집이 싫어 오래 한데로 떠돌았다 여기서 죽을까 살을까 여러 번 기웃거렸다 누군가 다녀간 온기로 보아 어쩌면 둘이거나 셋이었을지도 모를 정겨운 흔적 역력하고 문이 그대로 잠긴 걸 보면 한번 왔다가 한번 갈 줄도 아는 이 분명하다 누군가 내 집에 불을 놓았다 누군가 내 집에서 불을 끄고 아닌 척 그 자리에 다시 얼음을 놓았다 누군가 빈집에서 머리를 풀어 초를 켜고 문..

북리뷰/문학반 2021.12.10

[책]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시집 p. 58~59 호수 호수 위 작은 배 하나 마주 앉아 기도를 마치고 부둥켜안는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끌어안았던 팔을 풀자 한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배는 흔들리고 다른 한 사람도 놀라 일어나자 위태롭게 다시 배가 휘청였습니다 먼저 일어난 한 사람이 물로 뛰어들더니 헤엄을 쳐서 배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멍이 드는 관계가 있습니다 멍이 나가는 관계가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첫 별은 잠시 후면 이 호수에 당도해 홀로 남은 채로 멍이 퍼지고 있는 한 사람을 끌어줄 것 입니다 호수 위에 작은 배 하나 고요밖에는 아무 일도 없는데 푸드덕 물새가 날아오릅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꽃이 피고 피는 건 꽃도 어쩌지 못해서랍니다 p. 60~61 새 자면서 누구나 하루에 몇 번을 뒤척입니다 내가 뒤척일 적마다 누군..

북리뷰/문학반 2021.12.09

[책] 임경선 산문 <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산문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한 친구가 이 책의 한 구절을 읽어줬다. 그 부분에 끌려 책을 구매했는데, 구매할 때 드는 생각은 이렇게 시집처럼 얇은 책을 왜 이리 비싸게 판매하는가였고,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남의 가정을 엿본 느낌이었다. 심지어 내가 끌린 대목은 이 사람의 글이 아니라 인용문이었다...... 아놔...... 물론 읽는 동안, 재미는 있었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말이다. 대체 누가 결혼생활을 '안정'의 상징처럼 묘사하는가. 결혼이란 오히려 '불안정'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p. 11 작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하지현 선생님이 한 번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사람의 작은 단점 열 가지에도 내가 그 사람을 견디고 여전히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북리뷰/문학반 2021.11.29

[책] 게리 비숍 <나는 인생의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게리 비숍 Wise as fu*k 가끔은 내가 확신하고 있는 것들을 다른 각도로 건드려주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긍정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정적인 생각의 파워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항상 다른 이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조해왔다. 강요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중요한 다른 부분 한 가지를 빼고 긍정을 말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긍정 뒤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라줘야 된다는 것. 그렇게 해야만 그 긍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살다가 힘이 빠질 때, 잘될 거야,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필요 없다. 일단 움직이자. p. 42~43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문제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평가받기를..

[책]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구병모 이 소설은 그림 형제의 을 모티브로 한다. 가난한 구두장이 부부의 집에서 밤마다 그들을 위해서 구두 만드는 것을 도와주던 존재들은,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는 구두장이 부부의 삶을 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장이는 길드에 정식으로 가입된 기쁨으로 그 존재들에게 옷과 구두를 선물로 작업대 위에 놔두게 되는데, 그 존재들은 그 선물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지만, 옷을 나눠 입고 신발을 나눠신더니, 바늘을 내려놓고 노래 부르며 구두장이 부부의 집을 떠난다. 수제구두 공방을 하며 살고 있는 안이라는 남자가 있다. 모든 공정을 혼자 처리하는 관계로 수제화 한 켤레를 만드는데 한 달 이상이 걸려서, 분기별로 공방교실을 열어서 경제적인 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구두 관련 블로그가 있기는 하지만, 글도 얼마 있지..

북리뷰/문학반 2021.10.14

[책] 앤절린 밀러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 인에이블러 Enabler

앤절린 밀러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 - 인에이블러의 고백 인에이블러 Enabler 상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면서 스스로는 자존감을 높이고, 상대의 독립을 막는 사람 p. 23 마침내 내가 조장하는 아내, 즉 '인에이블러'임을 인식하게 되자, 나의 조장 행위가 남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버릇은 다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스며들었고, 특히 내 아이들을 조장하고 있었다. 조장한다는 것은 내 예상보다 훨씬 흔한 일이고, 중독성 물질을 남용하는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 31 나는 그들의 삶에 포함된 거친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으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다. 왜 그랬을까? 인에이블러였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

[책] 니콜라이 고골 <코>

니콜라이 고골 中 "코" 니콜라이 고골(1809~1852)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의 미르고로드에서 태어났다. 19세기 당시에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병합되어 있던 시기라서, 1990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각국이 서로 자기들 국가의 작가라고 주장하는 일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태생이니 우크라이나 작가라는 것과 대부분의 생활을 러시아 쪽에서 했으며 작품도 러시아어로 썼다는 점을 들어 러시아 작가라고 말이다. 고골은 1831년 첫 소설집으로 를 발표한다. 소설집의 제목에 있는 '디칸카'는 실제 우크라이나 폴타바주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당시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고,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의 변방 쪽이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이야기가 나름 이국적인 정서를 느끼게 해 주었고, 그로 인..

북리뷰/문학반 2021.09.17

[책] 사이토 다카시 <배움이 습관이 될 때>

사이토 다카시 프롤로그 中 p. 9 이 책은 벽을 깨뜨리는 방법'을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힘으로 부수는 것이 아니라 벽 자체를 얇게 만드는 방법이다. 침 묻힌 손가락으로 조금만 누르면 찢어지는 장지문 정도로 얇게 만드는 것이다. 벽이 얇아지면 나도 모르게 찢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고, 재미가 붙어서 손가락에 더 많은 침을 발라 더 세게 누르면 조금씩 구멍이 커지고, 그 구멍과 구멍이 이어져서 결국에는 벽이 무너지는 논리이다. 벽을 깨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단 2주이다. 그 시간을 즐기며 2주 후 달라진 자신을 기대해보자. p. 21 지적 능력을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그것의 몸통에 해당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가꿔야 한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어떠한 자격으로 산다는 의지로 가득 찬 마음'을 뜻한..

[책] 토니 로빈스, 피터 멀록 <돈의 본능 The Path>

토니 로빈스, 피터 멀록 The Path 총 14장의 쳅터 중에 1, 3, 12장은 토니 로빈스, 13장은 조너선 클레먼츠, 나머지는 피터 멀록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제9장 , 피터 멀록의 글은 개인투자자라면 반복해서 읽으면 좋을 거라 생각된다. 분명 '실수라 생각하지 않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정 부분 주식 중개인이나, 상속문제, 보험 문제에 대한 쳅터들이 있는데, 이 부분은 우리나라에 맞지 않은 제도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필요 없는 부분도 있어 사선 읽기로 넘어갔다.) p. 17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 마음 내킬 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자유, 늘 너그럽고 평온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 이것이 바로..

북리뷰/경제반 2021.08.22

[책]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The Noise of Time 책을 사놓고 책장에 있다는 거 조차 잊어버렸던 책이다. 아마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책인지 알았다면 바로 보았을 텐데 말이지.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산 책인데, 한 번에 한 권을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책을 샀을 때 바로 손에 잡지 않으면 이런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종종 책장들의 제목들을 둘러보는 습관도 생겼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리 두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책을 읽는 도중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야했고, 어느새 조지 오웰의 1984에 빠져있었고,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손수건 사이에 치약을 짜서 최루탄가스의 매움과 메스꺼움을 막아야 했던 시절,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하다가도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북리뷰/문학반 202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