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217

[책] 잉그리트 폰 욀하펜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트 폰 욀하펜, 팀 테이트 1942년 8월 그날 아침, 독일에게 점령된 유고슬라비아 첼예의 학교 운동장에 1,262명이 모여있었다. 건강 진단을 위해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오라는 새로운 독일 통치자의 명령을 받고 소집되었다. 가족의 수를 센 뒤 사람들을 아이, 여자, 남자로 나누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걸음마를 막 뗀 아이들도 부모들로부터 떨어져 검사를 받았다. 힘러가 진정한 독일 혈통의 특징으로 정해놓은 엄격한 용모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들은 1, 2등급에 배정되었다. 이들은 제3제국의 인구로 충원될 만한 쓸모 있는 아이들로 공식 등록되었고, 반면에 슬라브인의 특징이나 흔적이 조금이라도 보이거나 유대 혈통의 특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낮은 인종 등급인 ..

[책] 레오 페루츠 <심판의 날의 거장>

레오 페루츠 첫 문장: 나의 작업은 끝났다. 나는 1909년 가을에 있었던 일들, 연달아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을 적어 놓았다. 그 사건들과 나는 아주 기이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기록한 것은 완전한 진실이다. 아무것도 건너뛰지 않았고, 아무것도 억누르지 않았다. 그럴 까닭이 뭐가 있겠는가? 나에게는 무언가를 숨길 이유가 없다. 1909년 가을. 고르스키 박사는 궁정 배우 비쇼프의 저택에서 실내악 연주나 한번 하자면서 나(요슈 남작)를 찾아온다. 그들은 각자 첼로와 바이올린을 들고 오이겐 비쇼프의 집으로 간다. 연주가 한창일 때, 비쇼프의 집에 펠릭스(비쇼프의 처남)의 동료인 엔지니어 발데마르 졸그루프가 찾아온다. 그들은 한참 음악과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다가 비쇼프한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

북리뷰/문학반 2021.07.28

[책] 앎이 위로가 되는 책. 리사 펠드먼 배럿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리사 펠드먼 배럿 원제: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 이 책은 원제가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brain"으로 뇌에 관한 7과 1/2번의 강의이다. 한 번의 도입 강연과 일곱 번의 본 강연을 통해 뇌과학을 말한다. 첫 수업에서 1/2강이라고 표현한 것은 방대한 진화사를 살짝 훔쳐본 정도여서 1/2강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책의 들어가는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꼭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첫 수업에서 이 책의 전반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 소개되어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첫 장을 먼저 읽으라고 넌지시 던져준다. 뇌과학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왠지 어려울듯한 느낌이지만, 책은 굉장히 쉽게 읽힌다. 인간 행동에 대한 심리 관계 책을..

[책] "내 의무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2021) "베네수엘라 같은 사회에서는 유일하게 민주주의적인 것이 배고픔과 죽음이었다."라고 말한 베네수엘라 기자 출신인 작가. 2019년 에서 가장 창의적인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중반 유가 폭락으로 인한 경제 공황 이후 현재 베네수엘라의 참상을 그려낸 작가의 첫 소설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루멘 출판사와 계약 직후 22개국으로 판권이 팔릴 만큼 스페인어권 문학 사상 전례 없는 주목을 받은 소설이고, 곧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소설로 들어가 보자.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서른여덟의 여자.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아델라이다 팔콘. 이 이름은 그녀 엄마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녀 자신의 이름..

북리뷰/문학반 2021.07.23

[책] 벤저민 하디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ersonality isn't permanent

벤저민 하디 Personality isn't permanent p. 14~15 인간성의 가장 핵심적인 측면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고수하는 능력, 빅터 플랭클이 인간의 마지막 자유라고 했던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발생한 일에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즉 선택은 우리가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해준다. 그렇기에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며 의사결정을 하는 능력이 클수록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을 내기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선택 능력을 제한하고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제약들이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은 이 소설을 24살에 썼다. 몇 살에 이 소설을 썼는지 굳이 쓰는 이유는 어떻게 그 나이에 마흔을 바라보는 여자(이 소설의 주인공)의 느낌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이미 1954년, 18세의 나이로 을 발표하자마자 비평가상을 받음으로써 프랑스 문단의 대표 신인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비평가 상의 상금이 10만 프랑이었는데, 사강은 미성년이라 통장거래를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전부 현금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로 재규어 XK 140을 구입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버스에서 우는 것보다는 재규어에서 우는 게 더 낫다."라는 말을 그냥 할 수 있는 게 ..

북리뷰/문학반 2021.07.18

매트 헤이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The Midnight Library>

매트 헤이그 첫 문장: 죽기로 결심하기 스물일곱 시간 전, 노라 시드는 낡아 빠진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로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들여다보며 무슨 일이든 생기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느닷없이, 정말로 일이 생겼다. 35살의 노라는 어느 날 갑자기 키우던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어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다니던 악기점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고, 피아노를 가르치던 집에서 수업을 그만한다는 전화를 받았고, 그나마 약이라도 타다가 갖다 주던 배너지씨에게서도 이제 그만 그 일을 해줘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불필요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기로 결심하고 유서를 남긴다. 처음에는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안개가 걷히면서 직사각형 형체의 건물이 보였다. 그 앞에는 시계가 자정을..

북리뷰/문학반 2021.07.16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모건 하우절 ★★★★★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가끔은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조금 더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들이 있다. 살면서 분명 뭔가 빠진듯한 아쉬운 구석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제대로" 와닿는 게 있었다. 이럴 때는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에 위로가 잘 안 된다. 어쨌든 참 멋진 책이다. 수많은 부자를 만나면 만날수록 경제위기에 관한 기사를 쓰면 쓸수록 돈 문제는 재무 관리가 아닌 역사와 심리학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빚더미에 앉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금리를 공부할 게 아니라 인간의 탐욕, 불안정성, 낙관주의의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하락장 바닥에서 주식을 매도한 이유를 알려면 기대 수익률에 대한 수학 공식 ..

북리뷰/경제반 2021.07.14

온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 도리스 레싱 단편선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단편선 이 책 자체는 단편선이라 11편의 단편들을 품고 있다. 그 중 이 포스팅에서는 라는 소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 문장: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 런던의 대형 신문사 차장급 기자인 매슈 롤링스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수전. 둘은 배울만큼 배웠고, 벌이도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고 옳은 길만을 선택하는 감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커플이 되었고, 가정을 이루었다. 정원이 딸린 집을 구입하고, 네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수전과 매슈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엄마가 필요하다는 데 서로 동의를 하고, 네 아이가 일정한 나이가 된 후..

북리뷰/문학반 2021.07.06

인나미 아쓰시 <필요가 피로가 되지 않게>

군더더기 없는 인생을 위한 취사선택의 기술 인나미 아쓰시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은 잘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문을 했던 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였다. 무언가 내게 필요한 것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 그런데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원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나마 소제목들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 책에 관심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다가서는 글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 기록을 남긴다. p. 21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려는 태도는 아주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싶다면 필요 없는 물건을 채워 넣기 전에 그것을 받는 사람이 어떤 기분일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 그 행위 자체를 의심받거나 실례를 범할 수도 있다. 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