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례 2011 시집에서 남기고 싶은 시 p. 16~17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내 속에 캥거루가 있다면 믿지 않겠지요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캥거루가 새끼를 주머니에 안고 겅중겅중 뛸 때 세상에 별 우스꽝스런 짐승이 다 있네 그렇게 생각했지요 하긴 나도 새끼를 들쳐 없고 이리저리 숨차게 뛰었지만 그렇다고 내 속에 캥거루가 있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요 TV에서 캥거루가 권투를 하는 걸 보았어요 사람이 오른손으로 치면 캥거루도 오른손을 뻗어 치고 왼손을 뻗으면 다시 왼손으로 받아치고 치고 받고 치고 받고 사람이나 캥거루나 구별이 안 되더라구요 호주나 뉴질랜드 여행 중 느닷없이 캥거루를 만나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앞발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 수도 있겠더라구요 나는 가끔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