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40

박우현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박우현 박우현 p. 17 꺽지 그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닮았다 그는 싸움을 잘한다, 물고기의 왕이다 그는 먹이를 위하여 서둘지 않는다, 어슬렁거린다 그는 죽은 것을 결코 먹지 않는다, 차라리 굶어 죽는다 그는 고독하다, 늘 혼자다 그는 고독하지 않다, 고독마저 권태로울 때 큰 입으로 하품할 뿐이다. 아니 아니, 그는 어느 사내를 닮았다. 꿈은 잃어버리고 땅콩 껍질 같은 욕망만 남아 쓸쓸해 하는 p. 34~35 양산에 대하여 남자들은 왜 양산을 쓰지 않을까? 금남금녀의 구별이 사라진 시대에 귀걸이 목걸이 다 하면서 화장 다 하면서 덥다고 난리치면서 에어컨 펑펑 틀면서 선크림 떡칠해 바르면서 얼굴 검게 탈까봐 여자들 이상으로 신경 쓰면서 참 이상하다. 비 오면 우산 쓰듯이 햇빛 나면 양산 쓰는 것이 뭐가 문..

북리뷰/문학반 2022.01.09

황동규 [오늘 하루만이라도]

황동규 2020 황동규 2020 황동규 시인의 열일곱 번째 시집 1938년생,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의 황순원 작가의 아들이다. 1958년, 19세에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로 등단했다. 60여 년 동안 시를 쓰고 있는 황동규 시인은 이번 시집이 마지막 시집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계속 시는 쓰겠지만, 그 시들은 유고시집에나 실리지 않겠냐며. 열렬한 팬으로... 앞으로도 많은 새로운 시집이 계속되기를... p. 16~17 오늘 하루만이라도 은행잎들이 날고 있다. 현관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또 하나의 가을이 가고 있군. 수리 중인 엘리베이터 옆 층계에 발 올려놓기 전 미리 진해지려는 호흡을 진정시킨다. 해 거르지 않고 한 번쯤 엘리베이터 수리하는 곳. 몇 번 세고도 또 잊어버리는 한 층 계단 수보다..

북리뷰/문학반 2022.01.09

김경후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김현문학패 수상 이후 첫작품

김경후 2021 김경후 2021 시인 김경후는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 , , 가 있다. 2015년 현대문학상, 2019년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p. 12 손 없는 날 귀신도 쉬는 날, 짐 부리는 사내, 빈 그릇 위에 빈 그릇, 의자 위에 의자, 쌓고 쌓는다, 귀신이 쉬는 날, 사내의 짐값은 높지만, 꼭대기 올라가는 사다리차만큼, 덜컹, 덜컹, 내려앉은 사내의 등, 사내는 손 없는 날의 손, 집을 옮기며 짐을 부린다, 동서남북을 옮긴다, 기억을 옮긴다, 귀신도 부리지 못할 짐, 벽 같은 짐들 앞, 짐의 주인이 말한다, 나뭇잎 그려진 상자 못 뵜어요? 기억 안 나요? 안 나요, 기억하는 자만 잃을 수 있다, 오늘 사내는 손이 없다, 힘이 없다, 불탄 낙엽 더미..

북리뷰/문학반 2022.01.08

김용택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김용택 2021 김용택 2021 p. 28 아름다운 산책 하늘이 깨끗하였다 바람이 깨끗하였다 소리가 깨끗하였다 달아나고 싶은 슬픈 이슬들이 내 몸에서 돋아났다 p. 29 너무 멀리 가면 돌아올 수 없다 이슬 내린 풀밭을 걷다 뒤돌아보았다 이슬길이 나 있다 내 발등이 어제보다 무거워졌다 내가 디딘 발자국을 가만가만 되찾아 디뎌야 집에 닿을 수 있다 p. 32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잘 왔다 어제와 이어진 이 길 위에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이 나비를 숨겨준다 해야 바람아 흰 구름 떼야 내 자리를 찾아온 여러 날이 오늘이다 알 수는 없지만 어느, 고요에서 태어난 바람이 온다면 가벼이 날아오를 수 있다 기다려라 마음이 간 곳으로 손이 간다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이 이 나비를 숨겨둔다 p. 45 지금이 그때다 모든..

북리뷰/문학반 2022.01.08

김중식 [울지도 못했다]

김중식 2018 김중식 2018 김중식 시인은 1967년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1990년 을 통해 등단했다. 1993년 첫 시집 를 출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따뜻한 비관주의자"라고 강상희 문학평론가의 평을 들었다. 문단의 평도 좋았고, 나름 대중적인 지지도 받았지만, 그 이후로 오랜 시간 동안 김중식 시인은 시를 써내지 않았다. 1995년 일간지 기자로 취직해 일을 하면서, 잠시 짬을 내어 시를 쓰는 일은 시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생업이 있으면서 시를 쓰던 사람을 얕잡아 봤다는 고백과 함께 말이다. 이런 자신의 심정을 담아, 두 번째 시집인 의 앞부분에 "나는 근본주의자였다/두 손으로 번갈아 따귀를 맞았다"라는 표현으로 그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김중식 시인은 경향신문 기..

북리뷰/문학반 2022.01.08

[무거운 마리모 떠오름] 큰 마리모도 떠오를 수 있다. 시원한 물과 빛만 있다면.

드디어 큰 마리모도 떠올랐다. 역시 마리모를 떠오르게 하는 비결은 아주 시원한 물과 적당한 빛이었다. 직사광선은 NO! 작은 마리모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이후로 딱 한 달만의 일이다. 처음에 작은 마리모가 떠올랐을 때는 정말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 생각해서, 큰 마리모한테는 적용시켜 볼 생각 자체를 못했다. 안 했다. (사실 적용을 안 했다기보다, 나름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기의 차이에서 영향을 조금은 덜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은 마리모들이, 물을 갈아줄 때마다 떠오르는 것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지난주에는 반응이 없었는데, 드디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분명히 물과 빛의 영향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는데, 큰 마리모가 반응이 없자, 아이 둘의 반응은 똑같았다. ..

끄적끄적 2022.01.07

최승자 [기억의 집]

최승자 1989 최승자 1989 p. 14 이제 전수할 이제 전수할 슬픔도 없습니다. 이제 전수할 기쁨도 없습니다. 떠납니다. 막막 하늘입니다. 떠나지 못합니다. 배고픔뿐인 그대와 배고픔조차 없는 내가 피하듯 서로 만나 배고픈 또 한세상을 이룩하는 것을 고장난 신호등처럼 바라봅니다. (꿈이여 꿈이여 늙으신 아버님의 밑씻개여) p. 15 길이 없어 길이 없어 그냥 박꽃처럼 웃고 있을 뿐. 답신을 기다리지는 않아요. 오지 않을 답신 위에 흰 눈이 내려 덮이는 것을 응시하고 있는 나를 응시할 뿐. 모든 일이 참을 만해요. 세포가 늙어 가나봐요. 가난하지만 이 房은 다정하군요. 흐르는 이 물길의 정다움. 물의 장례식이 떠나가고 있어요. 잊으시지요. 꿈꾸기 가장 편리한 나는 무덤 속의 나니까요. 방(房): 방 '..

북리뷰/문학반 2022.01.06

[인생의 변화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황시투안, 말하기 심리학, 자기계발 도서

황시투안 2021 소중한 내 인생과 관계를 위한 말하기 심리학 황시투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당연한 말이 진부하게 들리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또 뻔한 소리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서평단의 책으로 이 책을 받지 않았다면 굳이 사보지 않았을 책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몇 페이지를 보기도 전에, 내가 얼마나 '내가 부여하고 있는 말이라는 틀'에 나를 가두고 사는지 알게 해 주었다. 내가 흔히 하는 사소한 말이나 행동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말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이듯이 단지 말투의 변화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관계의 개선을 위한 책일 수도, 자녀를 제대로 키우기 위한 책일 수도 있다. 단지 이론적인 부분만을 언급하지 않고, 너무나 와닿는 ..

김행숙 [이별의 능력]

김행숙 2007 김행숙 2007 김행숙 시인(1970년생)은 1999년, 「현대문학」에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고려대학교 국문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는 강남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는 , , , , 등이 있으며, 그 외 문학 에세이 , 평론집 등 다수의 책이 있다. p. 12~13 이별의 능력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 있는데 내장이 연통이 되는데 피가 끓고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든 안개를 거느리고 이민을 떠나는데 나는 2시간 이상의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의 빨래를 하고 2시간 ..

북리뷰/문학반 2022.01.05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최승자 2016 최승자 2016 p. 9 빈 배처럼 텅 비어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p. 18 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내가 운들 무엇이며 내가 안 운들 무엇이냐 해 가고 달 가고 뜨락 앞마당엔 늙으신 처녀처럼 웃고 있는 코스모스를 p. 26 당분간 당분간 강물은 여전히 깊이깊이 흐를 것이다 당분간 푸른 들판은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을 것이다 당분간 사람들은 각자 각자 살 살아 있을 것이다 당분간 해도 달도 날마다 뜨고 질 것이다 하늘은 하늘은 이라고 묻는 내 생애도 당분간 편안하게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p. 31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그라너저러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북리뷰/문학반 2022.01.04